심리학자 김태형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자이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보수주의자로서, 요즘의 반동적 현상들을 보며 이 책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혐오가 만연된 현상을 진단하고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과 완벽히 동일했기에 발췌해 볼 내용들을 뽑아 보았습니다.
민주적 절차로 만들어진 사회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폭력으로써 헌정질서를 마비시키고자 하는 권력자와 그의 추종자들.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그 행동은 정확히 반자유민주주의이며 독재를 원하는 자들.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협하고 대한민국이 80여년간 공들여 이룩해 온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하고자 하는 사회불만 세력들이 이렇게나 전면에 드러났던 적이 있을까요. 그들이 선전하는 혐오현상을 안타까워 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58) 사람들은 자기에게 해로운 대상을 강한 대상과 약한 대상으로 구분하여 다른 감정을 체험하는 데 강한 대상에 대해서는 분노와 증오를 느끼고, 약한 대상에 대해서는 혐오를 느낀다. 사회적 강자인 지배 집단은? 사회 약자, 더 나아가 국민을 혐오할 수 있다. 혐오는 지배 집단에게 예속된 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수도 있다. 평민들은 집에 집단에게 예속된 처지에 놓여있긴 하지만 약자에 비해서는 강자이므로 또 다른 혐오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독재 권력이나 독점 자본의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분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일반인들이 약자를 혐오하는 현상은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일반인들은 분노의 방향을 아래쪽으로 돌려 힘없는 사람들을 공격할 것이다. 결과 분노는 혐오로 변질된다. 인간에 대한 혐오는 잘못된 것이다. 강자와 다수의 특권적인 감정 또는 스스로 약자이면서 강자와 심리적으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지극히 배타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정승집 개도 정승 노릇 한다는 속담이 있다.
(77) 생물학적 혐오는 생존에 도움을 주며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유익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반면에 사회적 혐오는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의 유지나 번영에 해로울 가능성이 더 높다. (79) 대부분 혐오 연구자들은 협무가?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분노는 말이 통하는 감정이지만 혐오에는 외화 이유가? 없고. 혐오주의는 감정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신념으로 확장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85) 어떤 대상을 자기도 모르게 혐오하게 되었다면 이유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자기의 행 생각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혐오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대상이 박쥐라면, 그냥 싫어! 라 해도 되지만) 사람이라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는 혐오감정을 정당화해 줄 수 있는 합리화를 시도하기 마련이다.
(102)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 결정 몹시 싫어한 어떤 것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혐오하기도 한다. 외국인을 혐오함으로써 자신의 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사회적 약자를 혐오함으로써 자신이 주류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것을 안도한다. 이러한 자기 보호적 혐오는 자기 혐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신이 흑인인 것을 몹시 싫어하는 흑인이 다른 흑인들을 혐오하는 것. 자신의 추한 외모에 질색하는 사람들이 못생긴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 자신의 가난을 싫어하는 사람이 잘 가난한 이웃들을 혐오하는 것 등등 여러 가지 예가 있다.
(106) 열등감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애정결핍자는 타인들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유기 공포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자신이 우월한 존재이고 괜찮은 존재, 버림받을 위험이 없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병적인 수단을 찾는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말은 곧 타인들을 깔보고 경멸하고 혐오하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말과 같다. 당연히 과학적이고 정신병적인 쾌감일 수밖에 없는데 오늘날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크건 작건 이런 우월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112) 국가공동체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책임지고 보장해 주면 개인들은 사회적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혐오 현상은 자연히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다. 인류 역사상 반민중적 지배층은 혐오 현상을 반겼고, 그것을 적극 이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혐오가 만연돼 있다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분열되어 서로를 공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151) 자신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과 우월주의는 완전히 별개다. 열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우월한 사람의 정상적인 심리는 측은지심 같은 것이지 우월주의가 아니다. 우월주의는 열등감을 가진 사람의 심리이지 건강한 사람의 심리는 아니다. 돈만 아니라 열등감까지 갖고 있는 사람만이 가난한 이웃을 내려다보며 병적인 쾌감을 좇는다.
(163) 한국인들을 우월감 중독에 빠뜨리고 있는 중요한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돈 중심의 사고다. 사람을 돈에 따라 위계화하고 그 위기에 근거해 서로를 학대하는 사회를 당연시하고 있다.
돈에 대한 과도한 욕망과 집착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사회개혁이 필요하다. 사회가 북유럽 수준의 사회 안전망을 갖추거나 과감하게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면서 격차를 줄여나간다면 한국인들은 돈이 생존과 존중을 좌우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172) 우월주의는 남과 북 사이의 차이나 다름을 옳고 그름으로 둔갑시키는 주범이다. 동서독 통일 전 양측 사람들은 자유롭게 상대방의 방송을 청취하고 서신교환 상호 방문도 했다. 남과 북은 하루빨리 서로의 방송을 자유롭게 시청하고 연락과 통신을 주고받으며 접촉하고 왕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상대방의 학술 논문, 문학작품, 영화, 노래 등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확한 정보가 풍부해지면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해지고 가짜 정보에 기초하는 북한 혐오 현상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181)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색깔론을 악용하는 불공정한 경쟁을 해왔다. 빨갱이/종북 타령들.
공정경쟁이 아닌 색깔 공격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격투 시합을 할 때 칼을 숨기고 있다가 불리해지면 상대방을 찌르는 것과 같은 명백한 반칙이다. 이런 행위를 근절하지 못했기에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색깔 공격을 근절하려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극단주의와 혐오주의는 자신이 싫어하는 존재와 절대로 공존하지 않으려는 배타성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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