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봉화, 안동. 독립운동의 고장

TRAVEL/국내여행 2021. 2. 7. 21:51    Print Friendly Version of this pagePrint Get a PDF version of this webpagePDF

봉화시장 - 이산서원(준비 중) - 무섬마을 - 임청각  - 월영교


봉화시장과 이산서원, 영주시장의 공공미술

아침,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주방에 준비된 국화꽃을 넣어 국화차를 만들었다. 조금 많이 넣었나 싶다. 10시경 마당에 나와 계신 관리자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봉화송이식당에서 맛있는 아침을 먹고 봉화 시내 들어 가니 봉화 장날이다. 더덕,도라지,문어,두부 등등. 두부를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무쇠솥 그득한 그릇점. 가격 계도 나온 공무원들, 국산 뻥튀기 사러 온 사람들의 줄 등등, 이곳의 시간은 2000년대 이전 느낌이다. 

청량산 가다가 도저히 등산은 무리일 것 같아 영주 시내로 여정을 바꿨다. 가다가 영주 파머스마켓에서 막걸리 두개 사서 나왔다,

이산서원은 새단장을 준비 중.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이산서원

'영주 도착해 상설시장 근처 차를 세우고 랜떡을 찾아갔다. 랜떡에서 4천원어치 떡볶이,어묵,튀김 사고 바로 옆의 상설 365 문화시장을 구경했다. 돼지고기 빈대떡에 눈이 가고 각종 전들이 유혹한다. 무뼈닭발집에서 양념닭발 5천원어치 구입했다. 갓 부친 명태전과 빈대떡이 아른거린다. 하나로마트에서 맛있었던 순흥선비주를 사고 무섬마을로 출발했다. 화장실 가는 골목 벽에 그려진 현대미술에 저절로 눈이 갔다. 

무섬마을

 무섬마을로 가는 길 강가 모래톱이 너무나도 넓고 아름답다. 무섬마을에서 해설사께 이 마을의 독립운동이야기 등등을 듣고 안동 99칸 가옥 임청각의 주인 이상룡선생이야기도 들었다. 무섬마을에서 나온 독립운동 포상자는 5명, 포상받지 못한 사람을 합하면 20여명의 강성 독립운동 마을이다. 공산주의 운동인 적색농민조합운동에 무삼마을 선성 김씨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참여했고 일제에 의해 와해되었다. 무섬마을은 민속촌 같은 마을이지만 현재 생활하고 있는 마을이다. 70년대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 무섬마을은 외부와 3개의 외나무다리로만 연결되어서 외부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한다. 외나무다리 중 긴 것은 학교 가는 다리였다고 하고 짧은 것은 밭일 하러 가는 다리로 쓰였다.

마을 산책 하다 학교길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다리 중간 중간 교행할 수 있도록 쉬는 곳이 있다. 반대편에서 오던 아이와 가위바위보를 해 보기도 한다. 다리건너 가니 둘레길이 시작되었다. 둘레길을 걸어 마을 정면으로 있는 절벽 언덕을 오르고 다시 내려와서 두 번째 외나무다리로 마을에 돌아왔다. 

 

안동의 임청각으로 방향을 정했다. 낙동강에 면하고 있는 이상룡 선생의 종택. 사대부가 가질 수 있는 가옥 가운데 가장 큰 99칸 가옥이다. 이상룡 선생은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집안의 노비를 해방하고 임청각을 팔아 만든 자금으로 가솔을 이끌고 간도로 이동, 이회영 선생 등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분이다.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이기도 했다. 일제는 임청각에서 독립운동가가 9명 나오자 집 앞마당을 철거하고 중앙선 철도를 내어 낙동강과 가옥을 분리시켰다. 이것들은 기운의 맥을 끊고자 하는 데 집착에 가까운 신념을 보인다. 그런다고 끊어지던가.

가는 길 멋진 얼음벽이 나오기에 차를 세웠다. 용혈폭포라고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인공폭포다. 겨울에 드라마틱한 얼음빙벽을 볼 수 있다.  

임청각 앞에 도달했는데, 다른 건물을 착각했다.  앞쪽으로는 법흥사지 7층전탑이 우뚝 솟았다. 

숙소 왔다가 저녀 먹으러 안동국시집을 찾아갔다. 말도 안되게 푸짐하지만 우리 입맛은 아니다. 밥 먹다 임청각을 찾다 보니 임청각이 아니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앞에서 서성댄 걸 알고 다시 찾아갔다. 현재 임청각은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6시가 넘어 외부인에게 개방은 안된다. 임청각 주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건물 구경은 했다. 대문 앞을 떡하니 막고 있는 철도가 흉물스럽다. 중앙선이 복선전철이 되면서 이 길은 철거되고 임청각을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월영교에 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부부. 남편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남편을 그리워 하는 아내의 절절한 사연을 담은 편지(원이 엄마의 편지)가 무덤을 이장하는 도중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다리 모습에 담았다 한다. 월영교 주변 낙동강 따라 걷는 길이 1km정도 아름답게 펼쳐진다. 우리는 절반까지만 걷다가 돌아왔다.

숙소에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조금 더 찾아 보았다. 경북여행에서 의외의 발견을 한다. 대쪽같은 철학자들 이야기, 선비 이야기, 이몽룡의 원형,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직접 실천했던 쟁쟁했던 양반 가문들을 다시 조명하게 된다. 이상룡과 더불어 아나키스트였던 우당 이회영선생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대표적인 조선의 거물 집안 자손이었던 그는 아버지가 죽자 모든 노비를 해방하고 모든 재산을 처분, 가솔을 이끌고 간도에 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그가 가지고 간 자금 40만원은 소 값으로 비유할 때 현재 돈 650억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자신과 형제들(6형제 중 5명이 옥사함)을 비롯한 아들들, 사위 들이 거의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한 진정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본이었다. 

경북 유림에 대해 조선을 허약하게 만든 주류양반들이라고만 편향적으로 생각해 왔던 내가 부끄럽다. 

먹을거리와 숙소 (설명은 이곳)

아침) 봉화송이식당. 점심) 영주 랜떡.  저녁) 안동의 옥동손국수

숙소 ) 안동호텔 - 도심에 위치한 전통적인 관광호텔. 입구에 전자레인지, 정수기, 커피머신 등이 있어서 간단한 음식을 데워 먹는데 편리하다. 하루 밤 관광하기에 좋다. 3만원. 전기장판 컨트롤러가 양쪽 분리형이라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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