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여행 첫날, 마닐라
NAIA3 공항에 도착 해서 출국장을 나왔는데, 어찌해야 할 지 난감했다.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 온 그런 심정. 왜일까? 오늘 내겐 예약되어 있는 숙소도 있는데. 출국장 바깥에 있던 경비원에게 알고 있던 지식을 확인하려 물어 본다.
"Where can I take nissan taxi?"
"Yello cab?""Yep!"
"Go straight, at the corner."
"Thank you"
그렇구나. 물어 보면 반짝 시원해지는 거였는데. 내 난감함의 '실체'는 이런 건가?
숙소는 Townhouse hotel. 호텔이라기엔 많이 게스트하우스스러운 곳이다. 독특한 것은, 이곳의 방들이 모두 제각기 특징이 있단 점이다. 사방이 꽉 막힌 골방같은 곳부터 기둥 때문에 이상한 모양을 한 방, 일반적인 침실과 화장실을 갖춘 방 까지. 큭, 특징이 있다기보다는 무질서하다는 말이 맞으려나 아니면 각 방이 가진 핸디캡들을 개성이라고 달리 이름붙인 게 맞으려나. 경아와 내가 묵은 방은 3층, 선풍기방이다. 진짜 덥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엄동설한을 겪으며 발가락을 꼭 쥐고 녹였었는데. 극과 극은 안좋기는 마찬가지.
잠이 든 게 새벽 4시다. 조금 있다 깨 보니 더위 기운은 한 풀 가셨다. 아니, 더위는 그대로지만 내가 더워하는 기운이 한 소끔 끓어 넘쳐, 꺼진 불이 된 걸까.
나. 여행 둘쨋날
숙소 스탭에게 시 중심부로 어떻게 가야 되냐고 물었다. 모른다. 씨티 센터, 마카티, 마닐라 씨티 등등 어떻게 말을 해도 모른다.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 숙소에 붙어 있는 지도를 보고 들어와서 경아씨랑 상의해 국립박물관과 리잘 공원, 산 안드레스 마켓으로 일정을 잡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숙소는 마닐라 국내선 공항 근처 해변 방향의 Tambo 길 위에 있다. 가장 가까운 LRT역을 목적지로 삼아 걷는데, 길은 무쟈게 넓고 버스, 지프니, 택시 등등이 쌩쌩 옆을 지나쳐 간다. 뭐, 어떻게 세울 엄두도 나지 않는다. 론리에 나와 있는 파사이 부근 지도를 보고 걷는데, 지도상의 거리와 체감 거리가 '하나도' 안 맞는다.
결국 길을 완전히 잃었다. 난감했다. 어머니와 경아씨는 구름이 많아 걷기에 좋은 날씨라 하는데, 난감함에 열이 차오른다. 택시를 탔다.
"몰 오브 아시아 플리즈"
긴급 경로수정일까 아니면 리셋일까. 슈퍼마켓, 몰, 패션백화점이 줄줄이 붙어 있는 몰 오브 아시아는 거대하고 시원하지만 그닥 볼 것은 없다. 글로벌이 그런 거지.
리잘 공원에서 산 안드레스 마켓 가는 길에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에르미따, 말라떼 지역이 있다. 역시나 인파로 붐비고 잡다하게 먹을 것이 많다. 자주 보이는 한글 간판, 그리고 구걸하는 아이들. 역시 이곳은 돈이 많이 흘러가는 곳이구나. 길을 걷다 만약 이곳에 숙소를 정하려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숙소가 언뜻 안 보이기 때문에 또 얼마나 버벅댔을까. 이곳은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긴 하지만 방콕 카오산이나 호치민의 데탐 거리처럼 쉽게 여행 꺼리가 보이는 곳은 아니다. 여타의 다른 거리들처럼 지프니와 승용차가 범벅이 되어 사정없이 매연을 뿜는 곳일 뿐.
저녁, 숙소에서 경아씨가 한 마디 한다.
"당신 계속 좀 붕 떠 있고 예민해. 잠깐 잠 좀 자 둬.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집중해 보고."
정답이다. 왜 이렇게 난감하기만 하고 계속 투덜이가 되는 걸까.
내게 물어 보니 답은 나왔는데 그게 정답이려나. 내 안에 또 다른 정답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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