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5 500일의 썸머

Thought 2010. 2. 5. 23:16    Print Friendly Version of this pagePrint Get a PDF version of this webpagePDF

500일의 썸머. 한국 개봉 포스터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기막힌 카피가 아닌가. 영화를 보기 전엔 뭔 말인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확실히 공감이 간다. 


영화 보기 전에 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 
"띨띨하지만 착한 남주인공이 영악한 썸머란 여주인공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인데, 여주인공이 남자를 가지고 노는 거다"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봤지만 초반부 부터 깨지는 예상. 

이 남자 찌질하다. 어째 그리 여자의 속을 모르냐. 사랑이란 게 세상엔 없다고 말했던 여자는 사랑을 느끼지만 사랑이란게 있다고 설파했던 남자는 바로 앞에 다가온 사랑을 모른다.

이 남자, 머리속에 생각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여자, 보면 볼 수록 쿨하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여자는 이 남자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거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바로 이 남자의 성장담이다. 

그리고 이 남자, 사실은...

바로 나, 우리다. 

남자란 족속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보여주게 되는 허접찌질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누군가에 대해 마음이 동하면 불쑥 사랑한다고 믿고, 그녀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바라게 되고,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에 살을 붙여 나만의 파란만장한 소설을 쓰고, 실체가 없는 질투를 하고, 실체가 없는 실망을 하고, 어리광 부리고 그래서 결국은 진정 사랑하지만 모르고 있던 그녀를 놓치는 것.

놓치고 나서야, 안타까움 때문일까?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구창모의 노래 제목처럼 한단계 성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카피가 훌륭하다고 느껴지는군.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가 느끼는 이 영화. 홍상수 영화의 매우 소프트한 아메리카 버전 같았다. 홍상수 영화의 남 주인공이 구사하는 바로 그 찌질한 연애의 문법을 톰이 매우 낮은 강도에서 답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썸머는 홍상수 영화의 여주인공보다 훨씬 친절하다. 톰의 조언자 레이첼(여동생) 역시 친절하다. 

찌질남(흠, 20대 초반의 거의 모든 남자 ^^) 들에게 큰 충격 없이 소중한 교훈을 주는 영화랄까. 홍상수 영화는 많이 불편하지만!


tags :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