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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둔대2기(06-08)

2007-05-02 아프리카로 갈까?

by Anakii 2007. 5. 2.
그제 필(우리학교 원어민교사)과 이야기하면서 집에 들어오다가 필이 거의 매일 스케쥴을 잡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교 마치면 그냥 집에 들어오기 바쁜 내 생활을 대비해 보게 되었다. "관계"에 지친 자의 방어적인 선택이겠지만 스케쥴이 없어도 너무 없다. 
가정이 있으니 그럴거라고 필은 말했지만 아무래도 내 스스로가 너무 느슨해져 있는 게 문제는 문제다.

어제 저녁엔, 오랫동안 가입만 하고 안 들러 봤던 교사밴드 나디아 카페에 들렀다.

한 때 내 인생을 결정했던 음악. 밴드. 
고1 이후로 10여년간 내 삶의 중심이 되었던 음악, 밴드. 
마지막으로 연습실 폐쇄하고 손 놓은지 이제 10년째 되어 가는데,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덜컥 새로운 밴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게 두려워진다. 전반적인 자신감 결여인가. 어제 역시 나디아에 내 자신을 알리기가 망설여졌다.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인생에서의 내 배역을 충실하게 연기해야 할 것인데 요즘 내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미망의 함정에 빠진 중놈의 모습.


오늘 아침엔 일찍 일어났다. 6시쯤? 

경아씨와 부적응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런 녀석들은 아프리카로 몇 달 보내서 생활하게 해 봐야 해" 란 말을 했다. 너무나도 모든 것이 주어진 한국 사회. 그 아이들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다. 
세상의 다른 한 편에선, 요즘 한국아이들의 일상생활이 그들이 바라는 천국같은 삶이라는 사실을, 한국아이들은 모르니까.

그러다 문득, 

난?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일단, 나부터 아프리카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해.


게다가 기회가 좋다. 사기까와 에블린이 결혼 때문에 탄자니아로 가고 그곳에 머물다가 8월 28일 오기 때문.
첫 경험 아프리카에 현지인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가?

아침에 검색해 보니 인터아프리카란 사이트에서 할인항공권을 판다. 홍콩, 요하네스버그 경유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까지 899000원. 세금 포함 110만원 정도다
이정도면 놀랄 만큼 싼 가격인데 덜컥 예약신청 하고 나니 돌아오는 요하네스버그-홍콩 한 구간만 웨이팅 상태이고 다른 구간은 전부 예약 가능상태라 한다.

게다가 경아씨가 에블린에게 전화해 보니 대환영. 

이번엔 전에 만났던 에블린네 부모님도 오시는 데다 사기까와 에블린이 워낙 우리에게 받은 도움이 많은지라 사기까네 집안에서도 우리를 크게 환영할 거라고 한다
또, 에블린은 결혼 후에 사기까네 가족과 잠비아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로 여행갈 계획인데 같이 가자는 이야기도. 

일이 잘 풀려도 대단히 잘 풀리는걸.

항공권이 잘 예약되면 한 일주일 정도 사기까네 마을에서 살다가 같이 잠비아 여행을 한 후에 우리가족끼리 케냐나 에디오피아 정도를 둘러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결정된 아프리카 행. 

교무부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방학 근무일정을 조정해 달란 이야기를 드렸는데, 확답은 안 받았지만 잘 조정해 주시리라는 기대가 든다.

이번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미망에 빠진 속세의 중놈 아나키를 깨우는 테라피가 되어야 한다.

사실 걱정이 되는 게 없는 건 아닌데. 어쩌랴. 테라피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