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30 교사로서의 비애.

LOG/둔대2기(06-08) 2007. 4. 30. 17:34    Print Friendly Version of this pagePrint Get a PDF version of this webpagePDF
1992년 첫 발령을 받았을 때다. 얼마 지난 뒤 교사에 의한 아동 성추행 사건이 벌어져 사회 문제가 되자 교무회의에서 앞으로 아이들을 안아주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혹시나 모를 오해를 살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겠지만 난, 그에 대해 코웃음치고 넘어갔다. 스킨쉽이라는 것이 배제된 교육이란 게 뭔가? 구구절절한 말보다 단지 한번 꼭 가슴으로 안아주는 데서 많은 느낌이 전달되는 게 아닌가?
그 이후로도 난 내가 맡은 아이들을 자주 자주 안아줬다. 내 진심을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나와 안기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고.
그렇게 난 아이들과 쭉 살아 왔다.

그 이후로도 어떤 사건만 벌어졌다 하면 학교를 걸고 넘어지려는 몰지각한 인간들 때문에 자주자주 이와 같은 교무회의가 이어졌다

"방학땐 물놀이 주의하라는 내용을 꼭 계획서에 넣어주세요" 
"통학길에 차량을 조심하라는 말을 꼭 알림장에 써 주세요"
"학교 뒤편 공사현장에 출입하지 말라는 내용을 알림장에 꼭 써 주세요"
이 말에 숨겨진 말 ("그래야 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소재가 없답니다")

전주와 이번주의 교무회의. 저번주는 얼마전 일어난 학교 내 성폭행 문제가 이슈였고, 이번 주는 체벌과 학교 밖으로 돌을 던지는 어린이들에 대한 문제다.

알림 내용이란?

"되도록 아이들과의 접촉을 삼가해 주세요"
"체벌은 기본적으로 하지 말고 정히 체벌을 할 때는 시간이나 때리는 부위를 충분히 신경써서 하도록 하세요"
"학교 담장 밖으로 돌을 던져 차량 파손하는 예가 있었으니 학교 울타리 밖으로 돌을 던지지 말라는 내용을 알림장에 꼭 써 주세요"
("그래야 책임 소재가 없어진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답답하다. 아이들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스승이라면 꼭 안아주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매 또한 아끼지 않을 것이며, 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고 만일 행동이 잘못되었을 경우엔 따끔하게 벌을 주는 것이 맞다.
그리고 진정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혹시나 오해를 받는다면 학교전체가 나서서 그 교사를 감싸주어야 한다. 그게 교권을 지키는 일이다. 
아무리 일부 부모들이 파렴치한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마치 모든 부모가 그렇게 파렴치한 것인양 교사가 스스로 먼저 몸을 낮추고 보신에만 급급하다면,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데 무관심하다면 결국 교육 자체에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가 오지 않겠나.

일부 학부모들이 교원의 입지를 좁게 만들긴 하지만, 교원 또한 그에 부응해서 스스로의 보신에만 관심을 둔다면 학교교육을 믿지 못하는 나쁜 상황이 반복되어 커지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난 여전히 상관없이 아이들을 안아줄 것이며, 걔네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며 잘 못하면 때려주기도 할 것이다. (요즘은 나이가 먹었는지 그 작은애들 때릴 데가 어디있어? 하는 마음이 들긴 하지만.) 
돌 던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알림장에도 쓰긴 하겠지만 먼저 그 녀석들이 왜 학교 밖으로 돌을 던지는지 이유부터 물을 거다. (사실, 이유는 알고 있다. 그거... 재미있다. 나도 어릴 때 학교 울타리 밖으로 돌 던지는 장난을 했으니. 강물에 돌던지는 것과 같은 이치리라. 이해한다면 나쁘다는 것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을 게 아닌가)

하지만 나 혼자 생각으로 소신을 행하기에는 점점 힘들어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든다.
"스승"이고자 하는 내 생각과 별개로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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