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굴사 - 알뜨르비행장 - 카멜리아 힐 - 갯깍, 중문 대포 주상절리 - 고향생각고기국수(BEST) - 매일올레시장 - 이중섭미술관 - 강정포구
산방굴사
아침 8시. 산방산을 오르려 산방사에 도착했다. 아침이라 입장권을 받는 이가 없다. 무료로 통과. 이곳은 8시 반부터 입장료를 받는다. 산방사에서 현무암 계단길로 산방굴사까지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계단을 오르는 건 힘들지 않았고 기괴한 화산암들이 볼 만 하다. 낙석 위험이 있기 때문에 촘촘하고 강력한 안전망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멀리 용머리와 송악산을 전망할 수 있는 곳에는 화산 지형에 대한 자세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제주 전체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이며 지질공원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길은 산방굴사에서 끝났다. 우리가 올라간 길은 단지 산방굴사까지만 올라가는 길이고, 실재 등산로는 반대편에 있다고 한다. 등산은 포기.
산방산에서 돌아 오니 9시. 어제 잡은 대멸치와 이름모를 고기를 경아가 손질했다. 잡았으니 고맙게 먹어주어야 하므로. 멸치 내장 손질하느라 꽤 힘들었을 거야. 소금만 뿌려서 물 살짝 붓고 쪘다. 멸치 맛은 꽁치 맛. 빨간 고기맛은 몰라. 뭔 맛인지.
알뜨르 비행장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알뜨르 비행장. 일제가 중국침략의 교두보로 사용하려 대정읍민들을 징발하여 지은 비행장이다. 전투기를 은닉할 수 있도록 한 격납고를 20기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19기만 남아 있다. 하늘에서 보면 작은 풀이 나 있는 언덕으로 보일 것 같다. 관광 안내 책자에 잘 나오지 않고 내비게이션에도 등록이 안 되어 있지만 구글맵에는 등록되어 있어 찾아갈 수 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철근으로 뼈대를 세우고 철근 아래 나무판을 촘촘히 대어 틀을 만든 후 콘크리트를 부어 넣은 형태다. 콘크리트 표면에 찍힌 나무결이 선명했다. 70여년의 세월 동안 방치되었는데 이렇게 견고하다니 얼마나 힘든 노역을 했을까.
벌판에는 바람이 매섭다.
주변에는 4.3항쟁의 학살터인 섯알오름 위령탑도 있다. 대정읍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엔 비행장 건립에 징발되고, 해방 후엔 백색테러의 희생자가 되다니...
집에 돌아와서 다음지도에서 확인하니 막상 비행장은 격납고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다.
알뜨르비행장에서 나와 카멜리아 힐로 가는 길. 오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니 풍경이 엄청 다르다. 산방산 앞 모슬포항 풍경이 이렇게 환상적이었을 수가...
카멜리아 힐
동백언덕이라는 뜻. 정원은 매우 넓었고 산책로는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지만 동백의 개화 시기가 일러 화려한 꽃 구경을 하지는 못했다. 2월 쯤 지나야 산책로가 화려해 지려나. 제주모바일 쿠폰으로 2500원 할인 받아 5500원 낸 입장료가 살짝 아깝다는 느낌이다.
갯깍 주상절리, 중문 대포 주상절리
갯깍 주상절리는 진입하는 곳을 못 찾아서 해변을 헤메다 멀리서 지켜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나중에 보니 주상절리 바로 아래까지 접근이 가능하다던데. 아쉽다.
중문 대포 주상절리는 워낙 알려진 명승지라 국내외의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제주도 하면 상징처럼 보이는 키 큰 종려나무 가로수길에 관광단지가 형성된 그 모습, 그곳이 중문이었네. 비록 정해진 관람로로만 움직일 수 있어서 아쉬웠지만 주상절리 모습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향생각 고기국수집
점심으로 향토식 고기국수를 먹어보려고 '서귀포 고기국수' 를 검색하니 고향생각이라는 국수집을 많은 분들이 은근히 추천하고 있다. 동문로터리 앞 큰길에 허름한 간판으로 운영하는 집. 고기국수 둘과 멸치국수 하나를 시켰더니 푸짐한 밑반찬이 먼저 준비된다. 맛깔난 파김치, 배추김치. 곱배기 되냐 여쭤보니 걍 많이 주시겠다고 한다.
"곱배기라고 이름 붙여 일 이천원 더 받아 뭐합니까? 그냥 더 얹어 주면 그만이지"
수육도 먹고픈데, 한 접시 시키기엔 너무 많은 것 같아 절반만 파시냐고 물었다.
"절반은 안팔아요. 워낙 손이 커서 절반 준다고 하는게 막 줘 버리거든."
하하하! 절반을 안 파시는 속내의 진실. ㅋㅋㅋ
뽀얗고 짙은 맛 국물. 고기와 멸치 할 것 없이 깔끔하고 맛난다. 부드러운 편육을 국수 위에 듬뿍(아니 엄청!!) 얹어 주셔서 와,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파김치를 편육에 얹어 먹다보면 푸짐했던 파김치가 어느 새 사라진다.
다만, 맛으로 따져 보자면 슴슴하고 깨끗한 맛이라서 입맛 민감한 미식가를 제외한 일반 수도권 여행객들은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듯. 워낙 자극적인 맛이 대세인 세상이니까.
서귀포 올레시장
어제와 비슷하게 조금 한산한 분위기다. 수산물 코너만 좀 사람들이 붐비는 것 같다. 핫바 하나 사서 먹고, 수산물 코너 끝쪽에 있는 족발집에서 먹음직한 머릿고기 한 팩을 샀다. 야들야들한 느낌이 가득한 머릿고기 한 팩에 겨우 5천원! 족발도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남길 것 같아 욕심을 접었다. 머릿고기와 어제 먹던 프리미엄 햄을 요리할 생각으로 양파 두개, 새우살 발린 것, 매운 양념을 챙겨 넣었다.
시장의 옥돔. 거기서 순박한 새악시의 얼굴이 보이는 건 왜일까?
이중섭 미술관
미술관이 있는 골목은 이중섭 테마 거리처럼 구성되어 있고 이중섭님이 살던 초가도 있다. 미술관1층은 이중섭님의 작품과 일본인이었던 아내와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고, 2층은 미술관이 소장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의 느낌이 강렬하여 한참을 감상하게 만든다.
숙소는 제주월드컵 경기장 아래에 있는 앙크레펜션. 살림집 같이 꾸며졌고 넓은 방에 주방. 옷장 화장대 등등 거의 가정집 안방 같은 분위기다. 너무나 피곤하여 한잠 푹 잤다. 꿈 꿔 가며.
너무 일찍 하루를 마감한 것 같아 법환포구에 들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올레길 코스가 지나가는 곳은 어디나 붐빈다. 별 볼 것은 없다.
강정포구
아무리 봐도 중국 견제용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한/미 연합군용의 해군기지건설을 강행하며 물의를 빚고 있는 강정마을.
강정마을 초입으로 들어가면서 곳곳에 기지 건설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공사현장은 강정포구에서 풍림콘도 사이에 있는 해변가. 공사현장을 에워싸고 벽을 둘러쳤고, 공사현장으로 진입하는 곳곳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해군기지 공사판을 지나 강정마을에서 포구로 접어들었다. 아담한 포구에 설치된 거대한 방파제, 접안 시설. 원래 강정 포구가 이랬었나, 아니면 기지 건설과 더불어 일어난 변화일까?
기지 공사현장 길목에는 경찰 버스가 주차되어 있고 경찰들이 놀고(?)있다. 포구 마을회관에서는 결혼하는 커플의 식전 잔치가 한창이다.
제주도의 결혼 풍습은 결혼을 전후로 3일간 질펀하게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역시나 현수막에는 "저희 결혼합니다" 라는 미래형 문구가 써 있네? 아직 결혼하기 전이로구나.
방파제에 오르니 기지 공사 현장이 자세히 보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파괴가 진행된 공사.
그런데, 물빛을 보니, 예술이다. 배 드나드는 포구의 물이 어찌 이리도 투명한가. 다이빙 포인트라 해도 손색 없을 것 같은데. 바닷물이 적당히 빠진 갯바위에 따개비와 거북손이 지천이다. 앞으로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이 아름다운 바다위에 기름이 둥둥 뜰텐데. 어쩌나.
방파제 위 강태공 한 분이 자랑스럽게 보여주시는 어항을 보니 새카만 뱅에돔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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