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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공부/IDEA

건방진 마늘? ^^ 겸손한 마늘과 상추!

by Anakii 2013. 6. 18.

예전, 팝툰 연재되던 파밍걸 아샤라는 만화에 나오는 '건방진 마늘'이라는 표현.

"건방진 마늘을 얻으려면 절대로 시련을 겪게 하면 안되는데!"

"그래서 봄에 심은 마늘인데!"

시련이 없으면 건방져진다는 말. 장난처럼 내뱉은 말이지만 거기에 진리가 있죠.

흠, 우리 마늘은 겸손한 마늘이군요. 11월에 심자마자 바로 겨울이 닥쳐 어린 나이에 세상의 된 맛을 다 보고 봄에 튼실한 싹을 피워 내었으니. 수확하여 말려만 두어도 1년을 그냥 버티는 우리 겸손한 마늘.

그러고 보니 겸손한 상추도 키우고 있네요. 

경아가 만든 푸른솔중학교 영농동아리 밭은 학교 옥상에 있습니다. 옥상에 적당한 매트 깔고 나무도막 울타리 만들어 흙을 부어 놓은, 무늬만 텃밭 입니다. BTL학교라서 구색 맞추기로 만든 옥상정원. 부어 놓은 흙도 아무래도 운동장용 마사토 같습니다. 이런 흙에서는 잡초도 잘 안납니다. 

아주까리유박이 주원료인 유기농 거름인 흙살골드 뿌리고 축분도 뿌려서 그나마 땅심을 만들고 온갖 쌈추들을 골고루 심었습니다. 잘 안자랍니다. 쌈추인데도 자라는 속도가 더딥니다. 게다가 좀 자란 친구들도 옥상이라 뜨거워서 그런지 조금만 비가 안오면 축 늘어집니다. 크게 자라지도 않구요. 일전에 분수호스 사다가 설치하고 고무호스 연결시켜서 물을 쉽게 주게 만든 뒤부터는 좀 낫기는 합니다.

겸손한 상추란 이 밭에서 나온 상추입니다. 비옥한 땅이지만 그늘에서 키운 우리 밭 허약한 상추와 비교하면 두께가 네 배는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따서 목살구이에 싸 먹었더니, 상추가 아니라 무슨 약쌈 같습니다. 맛이 무척 진하죠.

이 상추의 전설적인 이야기.

이 상추를 영농동아리 아이들이 집으로 가져가서 냉장고에 넣고 이주일이 지났지만 전혀 숨이 죽지 않았다네요. 

더 놀라운 건, 마눌님의 경험담.

"지난 주 상추를 뽑아 선생님들 드렸는데 한 분이 그만 옷장에 넣어 두고 가셨거든? 그런데 월요일 상추의 상태가 똑 같은거야. 주말동안 그 더위에 옷장 속인데! 우리 상추 같았으면 다 축 늘어졌을 걸?"


오늘 이 상추랑, 우리 청오크 상추랑 함께 놓고 불고기 쌈을 먹습니다. 자꾸만 이 상추에 손이 갑니다. 아삭하니 씹는 느낌도 좋고, 고기와 궁합도 찰떡이고. 어쩜. 우리 상추가 또 남네요.

어려운 환경을 꿋꿋이 버텨 내어 생명력을 과시하는 겸손한 상추. 

물 많이 먹고 좋은 토양에 적당한 그늘에서 무성히 피워내는 건방진 상추들은 장마가 되면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데, 이 겸손한 상추들은 장마에 어찌 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후기)===========================================

장마를 지냈습니다. 여름 방학을 다 보내고 개학날 보니, 엇! 상추가 푸릇합니다. 세상에. 역시나 장마에 녹지 않고 가을까지 버티는 상추.

가을부터는 한 두어 달 상추를 따 먹을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먹기엔 늙은 상추입니다. 잎파리 좀 떼어먹다 뽑아 냅니다만, 장마 이기는 상추 처음 봤습니다.

역시 겸손하고 강인한 상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