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공부/연수 기록

로자와 함께 읽는 지젝

by Anakii 2013. 4. 5.

인간 존재의 현실을 구성하는 세 가지 차원.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 the Real, the Symbolic, the Imaginary.

예) 

장기를 두고 있는 너와 나 (실재계), 장기 말 규정과 이동 규칙 (상징계), 장기 경기 중 일어나는 상상속 세계, 전투들, 전략들 (상상계)

생활하는 사람들 (실재), '신'이라고 하는 규정과 각종 개념들 (상징계), '신'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 천국과 지옥 (상상계)

상징계는 상상계를 만들고 이 둘은 실재계를 지배한다.

쿠바가 유지되는 것은 욕망 거세에 대한 충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Fidelity of Castration :: 피델 카스트로와 비슷? 

쿠바의 현실. 지본주의를 지탱하는 생각인 계획적 구식화[각주:1]를 거부. 혁명적 정체[각주:2]를 선택한다.

우리 주변 환경이 점차 가상현실처럼 되어간다. 지방을 뺀 크림, 디카페인 커피, 육체접촉 없는 섹스, 전쟁없는 전쟁, 정치없는 정치(정치를 행정으로 대체), 관용적 자유주의적 다문화[각주:3].

하지만 그 타자성에도 불구하고 께름칙한 것이 있다. '아내 구타'와 같은 관습이다. 이러한 관습에 눈 감는 주체는 '이상화된 타자'가 아니라 '서양인 자신'이다. '아내 구타'는 빼 놓고 매혹적인 춤과 전체론적 현실관 같은 타자성만을 수용하는 것. 거기엔 디카페인 커피나 무알콜 맥주처럼 뭔가 실체가 빠져 있다...(중략) 즉, 가상현실은 그 실체, 즉 실재의 단단한 저항적 핵심을 제거한 현실을 제공한다.

운동 경기는 원래 전쟁을 상징한다. 팀웍이란 단결이며 경기에서 이기는 법과 전쟁에서 이기는 법은 비슷하다. 전쟁만큼은 덜하지만 부상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단단한 야구공, 위험한 축구공, 몸싸움 등등) 

게임에서 이런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경기의 룰만 따와서 만들어진 뉴스포츠(티볼이나 소프트볼 피구 등등)는 전쟁을 상징하는 운동 경기의 저항적 진실을 제거한 채 제시되는 가상현실인 걸까? 하긴, 뉴스포츠를 하는 것은 위험 요소가 적기 때문에 긴장감은 훨씬 떨어진다.

실재 현실 (Real reality)속에서 허구의 부분을 알아내는 것이 '현실이 허구의 가면임'을 폭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동물들은 가짜를 진짜로 속일 수 있지만, 유일하게 인간만이 진짜를 가짜로 속일 수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 진짜 속에서 가짜를 가려 내는 일이다. (라캉)

There are known knowns. These are thing we know that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there are things that we know that we don'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These are things we don't know we don't know.

(도널드 럼즈펠드)

known knowns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아는 것) known UNknowns.(아직 모르고 있는 것을 아는 것)
un
known unknowns (모르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

이자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네번째 앎이 unknown knowns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지식으로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다 (지젝)

20년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을 최강국의 폭격기가 폭격한다는 것의 의미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고 파괴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국가적 분노를 표출하는 데 좋은 타겟이 되지 않았을까. 미국의 폭력 이전에도 카불 시내가 911이후의 맨해튼 중심가와 비슷하게 보였다는 것이 결정적인 아이러니가 아닐까? '테러와의 전쟁'의 요점은 무엇인가? (지젝)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는 저항을 위해 후퇴하는 것. 이런 양자택일은 목표라 할 수 없다. 혁명적 목표는 '국가 권력 장악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변형시키고 그 기능방식과 토대 관계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뜻하는 바이다.

광기의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를 계승한 것. 레닌주의는 타성적 군중을 역사적 사명을 자각한 '혁명적 몸체'로 변화시키는 것이었으나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스탈린주의는 사명으로부터 후퇴하여 단지 '반동분자'를 색출하여  수용소에 감금하는 소극적 방식을 취함.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과 문학도 이런 완력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포스트모던적 저항정치 - 피어싱, 옷 바꿔 입기, 플래시몹 등 다양한 저항의 방식이 존재. 

벨라루스, 2006년 5월 루카셴코 대통령 3선 이후 한 네티즌의 플래시몹 제안. "민스크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경찰이 과민반응하여 아이스크림 먹는 시민 몇몇을 잡아갔다. 이는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켜 더욱 많은 시민이 참가하는 다양한 플래시몹을 보이게 됨. → 저항이 지속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호피족의 속담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바로 우리다."우리가 의존할 대 타자는 없다.


문명의 충돌은 없다. 이슬람의 테러는 근대 사회 정치적 결과물일 뿐.현실적으로 '충돌'은 지구적 자본주의와 연계되어 있다. 갈등의 배경이 되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사우디, 쿠웨이트와 같은 비민주적인 국가 - 석유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비민주성을 미국으로부터 옹호받는다. 

1953년 이란.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그 수상을 CIA가 조종한 쿠데타로 축출함. 근본주의나 소련의 위협이 없었으며  서방석유회사들의 독점을 끝내고 석유자원을 자국 통제 하에 두려하는  민주적 각성만으로 미국이 개입함.

9.11 이후 미국인들은 그들의 권역을 더욱 강화하기로 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그 권역 밖으로 걸어 나올 것인가?

"어째서 이런 일들이 '여기(미국)'에서는 일어날 수 있을까?" 라는 부도덕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외부 위협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시키고 있음. 편집증적 행동화에 빠지고 있음. 

바른 방향은, 실재의 세계로 나와서

'이런 일이 여기서 일어나서는 안돼 A thing like this shouldn't happen HERE'를  ▶ '이런일이 그 어디서도 일어나서는 안돼!A thing like this shouldn't happen ANYWHERE' 로 바꾸는 일. 그것이 9.11의 교훈이어야 한다. 우리는 테러리즘에 맞서야 하지만, 미국과 서구의 패권적 행위 역시 테러리즘임을 인식해야 한다.


  1. 물건의 수명을 정해 두고 시간이 지나면 폐기하여 새로운 제품을 사게끔 하는 생각 [본문으로]
  2. 정체되어 있는 것이 혁명적임을 주장하는 명제. 계획적 구식화에 따른 역동성(다이나믹)을 거부한다. [본문으로]
  3. 多文化 라는 말 자체가 외국인(타자)을 우리 문화 안에 끌어들인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와 다른 타인으로서의 성격은 제거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