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8 태안 갔다 왔어요

LOG/둔대2기(06-08) 2008. 3. 8. 21:38    Print Friendly Version of this pagePrint Get a PDF version of this webpagePDF
아침 5시 40분. 알람이 안 울려서 늦게 일어나 버렸다. 6시에 안양에서 만나야 하는데. 어쩌나

일단 차를 몰고 나가고 있는데 고성민간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미 다 모여서 출발해야 한다고. 어차피 우리집 앞을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로 가야 하기에 우리집 앞에서 기다려 사람들과 집앞에서 만나서 출발했다.

목적지는 태안 앞바다의 가의도. 언론에 태안 해변은 방제가 거의 끝났다 하나(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있었지만 사실, 이건 거짓말. 유화제를 뿌려 기름을 바다속으로 가라앉히고 해변 역시 모래를 살짝 뒤집어 보면 기름띠는 여전한데) 섬 지역은 아직 방제 중이라고 한다. 

태안에 가까와지니 가는 길 내내 안개가 짙다. 30m정도를 겨우 볼 수 있는 정도다. 신호등이 안보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격인데, 횡단보도를 지나려는 할아버지 한 분을 뒤늦게 발견해 식겁하기도 했다.

태안 앞바다 신진도항에 도착한 게 8시 40분. 아침을 안먹었기 때문에 컵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나 살펴 봤지만 하나 있는 GS25 편의점은 문을 닫았고(편의점이 문닫은 건 처음 본다) 다른 슈퍼에는 물을 끓일 수 있는 장비가 없어서 그냥 빵이랑 우유를 사들고 나왔다.

시간이 바투 되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대부분은 다음카페 태사봉(태안사랑봉사회)사람들이었다. 이미 면사무소에서 방진복을 받아 와서 장화랑 방진복이랑 분주하게 입고 있다. 주최측이 되는 성남 환경련 사람들은 조금 있다 왔고 이후 우리도 방진복과 장화를 받아서 준비를 끝낸 뒤 가의도로 향했다.

이경규의 라인업에도 나왔었던 가의도로 가는 배는 유람선. 임시로 운행되는 배다. 원래 예정되었던 인원인 65명이 늘어서 95명이 되었길래 인원점검 다시 하고 배에 올랐다. 성남 환경련 사람들, 다음카페 태사봉 사람들, 안양환경련과 여수에서 올라오신 분들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배를 타고 출발하기 전 모두들 방진복으로 갈아 입고 가는 걸 보고 아마 해안가부터 기름 범벅일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도착한 가의도 남항은 그 정도는 아니다. 남항에서 20여분을 걸어 북항 근처의 해변으로 가면서, 이럴 거면 다 도착해서 방진복으로 갈아입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고무장화에 방사선 제거반처럼 생긴 방진복을 입고 가려니 땀이 막 차오른다.


도착한 곳은 아직도 해안가 기름 제거가 되지 않은 가의도 북쪽 해변. 자갈밭에 어지러이 널린 방제용 헝겊과 바리바리 싸 놓은 쓰레기 푸대가 지금까지의 방제 작업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작업은 일단 돌을 닦는 것 부터. 해안가의 무수한 자갈은 타르 덩어리로 떡져 있었고 다들 한 줄로 앉아 돌을 닦아 내고 닦은 돌은 앞쪽으로 던졌다. 닦아 낸다고는 하나 기름이 어떻게 다 닦일까. 대강 닦아 내고 던져 놓는 거다. 

난 맨 앞쪽의 조금 더 오염이 심한 위치에서 돌을 닦고 있었는데 한두 시간 다다 보니 아무래도 이래서 될 일 같지가 않다. 돌 닦기 보다 오히려 자갈 사이사이 해조류가 뭉쳐 놓은 기름 찌꺼기를 먼저 없애야 할 것 같아서 작업 변경. 우리 환경련 팀은 일단 떡진 기름 찌꺼기를 솎아 내는 데 집중했다. 


기름닦기에 열심인 이세락 차장

끝없는 작업... 어느새 시간이 후딱 흘러 12시 반이랜다. 굉장히 빨리 흐르는 시간.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한 켠에선 지역주민 분들이 라면을 삶았는데 어찌나 많이 한꺼번에 삶았는지 탱탱 불어 터졌지만 김치를 조금 얻고, 컵라면 그릇에 불어터진 라면을 더 넣고 같이 쓱쓱 섞어 먹는 맛은 정말 꿀맛이다. 일을 해야 음식의 진짜 맛을 알 수 있는 걸 거다.

오후엔 우리가 대강 닦아 놓은 곳을 포크레인이 뒤집었다. 포크레인이 한번 훑고 가니 아래에 적나라하게 기름 범벅이 된 자갈밭이 나온다. 겉 보기에는 그리 심하지 않게 보였지만 아래는 두껍게 기름층이 있었던 것. 이번엔 돌 하나하나 닦을 생각은 버리고 아예 부직포로 빨래하듯 훔쳐 냈다. 훔쳐 내고 돌을 헤집으면 다시 기름 가득, 훔쳐내고 다시 그 자리를 헤집으면 그 아래에 기름이 가득. 

한 자리를 서너번 정도 헤집어야 비로소 살짝 모래가 비치지만 그도 역시 기름에 범벅된 안타까운 모습이다. 기름이 본격적으로 외부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방진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머리가 띵해 온다. 
이런 모습은 사실 태안 해변가도 마찬가지라고. 멀쩡해 보이는 백사장을 조금만 뒤집으면 기름 층이 나온댄다. 그런 상태인데도 거의 방제를 다 했다고 떠들고 있다는 거다. 유화제를 이용해 바다에 뜬 기름을 물이랑 섞어서 내려 보내 놓고 겉으로만 멀쩡하게 만들어 놓고 방제가 끝났다고 한다.

부직포는 몇 번 훔쳐내기가 무섭게 기름떡이 되어 포대자루로 들어간다. 자갈을 덜어내다 보니 예전에 작업하다가 그냥 두었음직한 기름떡 헝겊들도 많이 보인다. 보이는 대로 일단 기름떡을 제거하고는 있었지만 역부족. 
부직포에 기름을 묻혀 내는 만큼, 딱 그 만큼의 의미가 있으려니 하고 계속 기름층을 훔쳐낼 뿐이다.

1시정도에 시작한 작업이 세시 반이 되자 점점 물이 밀려 들어와서 자연스레 끝나게 되었다. 아까까지 힘들여 파헤쳐 놓은 기름층이 고스란히 물로 들어간다. 몇 달 동안 이렇게 기름층 위로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오고 나갔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이 여기 가의도 뿐일까...




돌아오는 배를 타러 북항에 가 보니 기름떡 자갈을 끓여 기름을 제거하고는 다시 쏟아 놓는 기계가 보인다. 기름은 제거되지만 혹시나 자갈에 있을 지 모르는 작은 미생물 조차 완전히 제거되는 안타까운 일이 만들어 진다. 이런 자갈을 바다에 쏟아 놓으면 말 그대로 유기물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는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문제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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