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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둔대2기(06-08)

2007-11-23 문명의 파괴자 저작권법(지적재산권법)

by Anakii 2007. 11. 23.
법이란 무엇인가?

사회를 유지,발전 시키기 위해 탈사회적인 행동에 대해 가하는 최소한의 윤리. 윤리만으로 제어할 수 없을 때 내미는 최후의 칼. 윤리 중의 가장 작은 테두리. 이렇게 난 배웠다. 때문에 법을 지키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며 법 말고도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이 말은 법이 만들어질 때는 문명과 그 사회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큰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며 법이 윤리의 테두리를 지나칠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작물의 공유, 재창조, 확산을 막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 지적재산권법. 지적재산권을 가진 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인 가진것을 나누려 하는 마음과 내가 가진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마음과 내가 가진 것이 좋을 때 공중에게 확산 시키려 하는 마음까지 제어하는 그 법이 과연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 그가 욕심이 적고 베풀려고 하는 좋은 사람이라면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손에 넣으면 친구들과 공유하려는 마음은 당연하다. 좋은 책을 읽었다면 친구에게 빌려주어서 읽히려고 하고 좋은 정보를 얻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정보를 향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인데 이것은 비윤리적인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문화적 유물들. 이들은 모두 선대의 유물을 배우고 재창조하여 발전이 가능했다. 세익스피어도 이전의 저작물들에 영감을 받았을 것이고 많은 예술가들 역시 이전의 예술작품에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세계를 재창조한 것이다. 이런 공유와 재창조는 인간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온 것이 아닌가?

물론, 옛부터 위작을 만들어서 판매함으로서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이 있어 왔고, 이는 윤리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는 원작의 명성에 기대어 그 작품을 '판매'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비윤리적인 일이며 법의 테두리에서 제어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다른 이의 멋진 작품을 베껴서 (실력이 된다면) 친구에게 주거나 재창조작임을 명백히 밝히고 다른 이에게 파는 것은 비윤리적이지 않은 일이다. 아니, 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그는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다.

하지만 지금의 저작권법은 한 번 만들어진 저작물에 대해 원 저작자(실제로는 출판업자나 레코드사)에게 저작료를 지불하지 않고서 재창조와 공유, 확산 활동을 하는 것 조차 불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전송권이니 배포권이니 하는 거창한 용어를 붙여.

  • 만약 옛날의 예술가나 작가들에게 이런 저작권법이 적용되었다면 우리는 수많은 예술작품이나 소설들을 향유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영감을 받은 작가와 그의 출판업자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문제는 현대 사회의 저작물들이 너무나도 쉽게 복제가 될 수 있고, 복제된 사본이 원본과 똑 같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는 출판업자들에게는 악몽이다. 누구도 출판된 저작물을 구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간단히 복제를 하기 원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곧 출판업자의 도산을 의미하며 더 이상 저작물이 출판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저작물의 디지털화는 과연 누가, 왜 시작한 것일까? 바로 출판업자들이다. 저작물을 저비용으로 손쉽게 복제하여 판매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모든 이익을 남기는 일에는 리스크가 있는 법인데 그들은 이익은 극대화 하기를 원하면서 그로 인한 위험은 법의 테두리가 지켜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이 저작권법이다. 그들이 이익을 극대화 하기를 바랐다면 그에 따른 위험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이 윤리가 아닌가? 종이출판에 따르는 비용은 없애면서 종이출판과 마찬가지의 이익을 얻으려 하는,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으려 하는 그들의 행동은 과연 윤리적일까?

책이 출판되었을 때에도 필사본이 있었고 최근까지 복사기를 이용해 채을 복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이 드는 필사본은 아무나 만들 수 없었고 복사기를 이용해 복사된 책을 보는 일은 일부 대학교재에서나 있었던 일일 뿐 일반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복사본은 원본보다 훨씬 낮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었다. 단지 집에 두고 보기는 맘에 안들지만 필요하긴 한 책 그런 대학교재에서만 복사가 흥했을 뿐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CD가 없었을 때 많은 이들은 라이센스 원판을 살 돈이 없어 소위 빽판 이라 불리는 복제판을 사서 들었다. 라이센스판 보다 거의 10여배나 저렴했기 때문에 사긴 했지만 빽판의 음질은 라이센스판과 비교할 수 없게 열악했다. 그래서 중요한 음반의 경우 큰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라이센스판을 샀었고, 그렇게 모인 라이센스판은 다른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존재였었다.

그러나 쉽게 복제가 가능한 CD가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사본과 원본의 음질이 일반인이 듣기엔 같으니, 누가 원본을 사겠는가? 
  • 그렇지만 사용자들 누구도 음반사에게 복제하기 쉬운 CD로 음반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일은 없다. LP에서 CD로 넘어갔던 현상은 음반사들의 판단이며 그로 인해 파생된 mp3 파일은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음반사들은 이런 문명의 발전을 전혀 예상치 못했고, mp3가 일반화된 현실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CD에서 mp3파일이 추출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일종의 진보이고, 추출한 mp3파일을 남과 같이 공유하려는 생각은 선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저작권법은 인간의 기본적인 선한 욕구를 제어하려 한다. 그리고 쉽게 만들고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출판업자와 음반사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저작권법이 과연 윤리적일 수 있는가? 또한 윤리의 가장 작은 테두리라 하는 "법" 이란 칼로써 보호받아야 하는지 심히 의문스럽다.


(이 글은 기존 책이나 음반을 복제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이익집단의 생각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단지 선의로 저작물을 나누어 쓰려고 하는 개인에게도 이 저작권법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선의로 저작물을 나누어 쓰려고 하는 행동이 불법적인 행동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개탄스러워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