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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둔대2기(06-08)

2006-05-19,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by Anakii 2006. 5. 19.
저는 우리 환경련의 최고참(!)회원이랍니다. 처음 시작한 것이 우리 환경련 처음 출범하던 96년 부터니까 이제 만 10년이 되는군요.  
하지만 그 뿐입니다. 10년동안 그다지 열의도 없이 주변부만 맴도는 한심한 회원이었으니까요. 회원이 된 것도 뭔가 굳은 결의도 없었습니다. 단지 이런 활동에 머리 하나라도 보태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시작했지요. 태생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산을 뚫고 도로가 생길 때마다 먼 길 가까워진다고 좋아하는 부류였지요. 근처에 대형 마트가 생기면 물건 사기 편해졌다고 마냥 좋아라하는 전형적인 도시형 인간이었거든요.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좀 관심이 있어야 알고 싶게 되고 얼마 정도는 알아야 그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고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사랑이 싹트는 것이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이러던 제가 지금에 와서는 좋은 친구들과 호젓한 산을 거니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길가에 피어있는 씀바귀 꽃을 한참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좋아라 하는 녀석이 되었으니 일종의 인생역전 아니겠습니까?

변화는 2003년부터였습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변화가 시작되었죠. 천상 직업이 선생인지라 96년부터 아이들의 생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주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을 살펴 보아도 저의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내가 어떻게 생활했었는지를 남겨 놓은 사진이 없던 것이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의 추억이 어린 일상생활을 기록한 사진을 모아 스캔하여 학년 올려 보낼 때 씨디로 구워서 매년 선물을 했습니다. 그러다 디카로 바꾸어 아이들 찍어주기 5년째. 2003년에는 드디어 점점 화질에 대한 눈만 높아져서 비싼 카메라(소니 717입니다)를 사러 용산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간 우리 마누라가 아예 사는 김에 더 좋고 맘에 드는 걸 고르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당시 최고가였던 니콘 5700을 덜컥 사게 되었어요. 당시 125만원의 거액이었답니다. 

능력보다 너무 비싼 물건을 가지게 되니까 웬지 잘 활용하지 않으면 죄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 카메라의 최강점이었던 접사촬영을 시작한 것이 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저와는 달리 자연과 산, 꽃을 좋아하는 마누라가 알려준 수리산의 숨겨진 장소에 갔지요. 때는 겨울 끝자락의 아직은 쌀쌀한 2월 말. 처음 보는 앙증맞은 들꽃들을 가까이서 찍게 되었답니다. 찍고 나서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해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꿩의 바람꽃, 노루귀 등을 찍었는데 이것들도 예뻤지만 오히려 더 놀란 꽃들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흔하디 흔한 꽃인 꽃마리, 꽃다지, 냉이, 민들레의 사진입니다. 접사는 그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마치 웅변하는 것처럼 온몸으로 보여주더라구요. 노래로만 알고 있었던 꽃다지라는 놈을 처음 보았거든요. 또한 꽃마리의 앙증맞은 아름다움이 모니터 가득 크게 확대되어 드러나는 경험은 일종의 충격이었습니다. 이리도 아름다운 녀석들이 제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었다니요! 특히 꽃마리는 너무 작아서 신경쓰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꽃입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꽃마리가 출근 가에 피어 있었겠건만 한 번도 그를 바라본 적은 없었거든요. 

왜 꽃이라 하면 으례 장미, 국화나 카네이션(^^)정도를 생각했었던 사람이라도 막상 꽃을 그려보라 하면 항상 그려대는 그 뻔한 꽃모양이 있쟎아요. 바로 그 모양이 꽃마리였다니요! 그리고 나물로만 알았던 냉이나 씀바귀의 꽃이 그리도 풋풋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싹트게 되는 시초인 관심의 시작이었답니다. 

그런데 그것을 시작으로 들꽃을 찍게 되었어도 첫 관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없었던가봐요. 
2003-2005년까지는 그저 봄에 피는 예쁜 꽃들을 중심으로 찍었습니다.  꽃의 진정한 모습보다는 사진이 얼마나 예쁘게 나올까 하는 관심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접사촬영의 장점을 살려 주제를 부각시키고 필요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버리는 촬영을 했었죠. 일종의 자기만족이랄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런 촬영으로는 사진을 보고 꽃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내는데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름을 알려면 꽃과 잎의 모양, 즉 전체의 모양을 알아야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접사보다는 전체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데 좀 더 신경을 씁니다. 
꽃 찍은지 4년만에 저의 관심이 예쁜 사진에서 꽃 그 자체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들꽃을 찍었을 때는 예전에는 모르고 있던 들꽃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가졌었지요. 지금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녀석인지에 더욱 관심이 가더라구요. 왜 우리도 처음 사람을 만나면 외양이 보이지만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해 지듯이 말입니다.

꽃의 이름을 알고 나니 이제는 그들이 달리 보입니다. 흔히 무심코 밟고 지나가게 되는 녀석들도 쉽게 눈에 뜨이니 조심하게 되지요. 이제는 길을 걷다가도 “저기 꽃마리가 뽀얗게 피었네~”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꽃마리가 흐드러지면 멀리서는 참 뽀샤시~~ 하게 보이죠. 
제가 생각하기에도 진정한 인생역전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이래로 생활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처음엔 찍고도 꽃 이름을 몰라서 환경련 생태 모임에 사진을 올리고 꽃 이름을 알려달라고 부탁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이름들은 결국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구요. 요즘엔 아예 이름을 알려달라 하지 않고 이리저리 열심히 여러 책을 찾아 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이름이어야만 그나마 조금 기억에 남으니까요. 게다가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스치며 책에서 본 꽃들의 이름도 많은 도움과 공부가 되더라구요. 
요번에 아이들 데리고 화성으로 수련회를 갔는데 우연히 처음 보는 꽃을 발견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이름...  "그래 이 놈이 구슬붕이야!" 구슬붕이가 뭔지도 저는 몰랐지만 아마도 예전에 책에서 다른 꽃을 찾아 보다가 우연히 본 이름이었겠지요. 이름이 예뻐서 무심코 기억해 두었을겁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석을 보니 즉각 구슬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나중에 찾아보니까 꼭 맞더라구요.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이렇게 차차 이름을 알고 기억하게 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이제 꽃 찍기도 4년째입니다. 겨우 이제서야 꽃들이 보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산에 가도 제법 이름을 알려 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 꽃마리를 보고 흔한데도 너무 아름다워서 충격을 받았듯이 우리 아이들도 놀랍니다. 꽃마리를 보여주고 이름을 알려 주면 "이렇게 예쁜 꽃이 있어요?" 하면서 참으로 좋아라 합니다. 꽃마리가 잘 피면 작고 앙증맞은 초미니 꽃다발이 되잖아요? 가끔 제가 아이들에게 꽃마리 다발을 꺾어 미니 꽃다발이라고 주면 아주 기뻐합니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도 지나치는 길가의 꽃마리를 보고 제게 꽃다발이라고 줍니다. 제가 그랬듯이요. 아이들도 꽃마리를 통해 들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요.

일전의 환경련 생태산행에서 은방울꽃을 처음으로 보고 찍었습니다. 그때의 행복감이란... 
모습이 잘 나올 수 있게 이리저리서 그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일행을 따라 가느라 미처 담지 못한 모습이 있었기에 일행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고 다시 산을 달려 내려가 찍었습니다. 이젠 예전 접사에 강하다던 5700도 제겐 없습니다. 새로이 구한 똑딱이 콘탁스 카메라를 들고 곡예같은 포즈를 취해 가면서 사진을 찍었지요. 참 흡족한 마음으로 산을 다시 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 찍은 듯한 그런 모습으로요..... 

참....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인간이 이리도 변할 수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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