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직무연수 필기

연수와공부 2011. 7. 29. 21:27    Print Friendly Version of this pagePrint Get a PDF version of this webpagePDF

문화유산 직무역수를 맡으신 선생님들은 모두 국내최고수들이다. 독보적인 존재들. 3시간의 실내강의가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다. 3시간도 그분들의 시간으로는 너무나 짧다. 한가로운 실내강의를 마치 영화 올드보이를 보듯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여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연수, 최고 중의 최고다.



도깨비신앙 관련 - 김종대선생님 (중앙대)

1. 우리나라의 도깨비=돗(종자,火-재물과 부) + 아비 = 남성형 존재. 여자형 도깨비는 있을 수 없다.

이미 알고 있는 뿔 하나 둘 달리고 색깔 있는 도깨비(치마, 또는 원시인풍의 코스츔 + 돌기 있는 방망이) 는 일본요괴인 오니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임 (1940년대 이후)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원래 우리나라에 없는 이야기. 조선어독본에 이야기가 실리면서 확산됨. 게다가 일제강점 후기에 일러스트까지 오니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현재 도깨비의 이미지가 형성됨
혹에서 노래가 나온다 한 영감의 말 - 도깨비에게는 사기꾼의 역할을 함. -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심기 위한 게 아닌가?
학교괴담, 화장실괴담, 마스크 괴담 등등 대부분 역시 일제강점기에 생김.

2. 도깨비 전승의 유형

가. 도깨비 때문에 부자되기 - 어수룩하고 건망증 심한 도깨비
여자와 지내던 도깨비가 여자에게 속아 돈과, 기름진 땅을 주게 된다는 이야기
남자에게 심부름 시킨 도깨비가 매일매일 돈을 갚는 이야기
나. 도깨비와 씨름하기, 도깨비불 보기 - 경험담에 의거함
다. 도깨비 방망이 얻기 - 민담으로 재구성된 이야기

옛 이야기 속의 효자를 암시하는 장면 - 재물이 생겼을 때 먼저 부모님, 마누라, 자기 순으로 챙기는 모습
나쁜 이를 암시하는 장면 - 재물이 생겼을 때 자기만 챙기는 모습으로 표현함

3. 도깨비 신앙
제물은 메밀이나 평소에 먹는 음식을 바치면 된다. 하지만 매일매일 빠짐없이, 서운치 않게. 매일매일 정성을 바치면 큰 재물을 주지만, 정성이 없어지면 재앙을 줌.

가.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 뱃고사, 여천의 진생고사(도깨비 초막을 절벽에 두고, 배 위에서 초막을 향해 제사), 제주 영감놀이 (종이로 영감탈을 만들어 고사를 지낸다. 마을 제의임)
나. 화재신 - 전북, 충북 산간마을. 산간마을의 집들은 붙어 있기 때문.
다. 역신으로서의 기능 - 순창 탑리의 도깨비제, 진도의 도깨비굿, 잠녀의 잠수병을 치유하려는 제주 영감놀이.

의궤 속 왕실공예 - 장경희선생님 (한서대)

프랑스로부터 반환받은 외규장각 의궤 안에 궁중 오례의궤가 있음.
궁중 오례는 가례(생활,혼사), 흉례 (국상, 왕릉건설), 길례 (제사), 빈례(사신맞이), 군례 (군대의 사열) 로 나뉨.
이 중 가례,흉례,길례의 절차를 규정한 의궤가 많음

도감의궤 (국가의 중대사를 치를 때 설치되는 기구인 도감을 설치하는 절차),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임.
 
의궤에 의하면 궁중 공예품, 물품을 원본처럼 복원할 수 있다. 현재 는 고궁박물관에 있는 만여점의 제기(제사도구) 분류도 안되는 실정. 의궤의 번역, 의궤에 따른 분류 등등 할 일 많다.

유교적 검약은 사대부에 해당하며 왕실은 권위와 위엄을 살리기 위해 의궤에 따라 철저한 규범에 따른 장엄물품을 만듦. 왕실이 권위가 있어야 국가가 안정되기 때문.

결국 의궤는 매뉴얼이다. 예를 들자면,
화성성역의궤 = 화성을 만들었던 매뉴얼. 시공인부와 재료까지 시시콜콜하게 있음
산릉도감위궤 = 임금 사후 능을 만들기 위해 도감을 설치하고 일을 진행하는 절차를 상세히 나타낸 매뉴얼

오례 예식은 법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다.
조선전기 경국대전에 따라 국조오례의 가 만들어졌고.
영조때 속대전이 만들어지면서 국조 속 오례의가 만들어졌다. 영조시절은 청/일간 중개무역을 맡던 조선의 위치가 쇠퇴하는 시기 (청-일의 직접 무역으로) 현재로 말하면 IMF시절. 긴축재정을 위해 법전을 새로이 편찬한 것임.
정조때 춘관통고 라는 이름으로 다시 오례의를 개정함. 홍삼 무역을 시작하며, 금광과 은광을 개발하여 다시 재정이 풍족해 짐졌기 때문.

왕릉은 당시 정치,경제,사회,문화,풍속이 집결된 역사,문화의 보고이다. 마치 타임캡슐. 또한 정자각, 비각, 문무석인, 석물, 단청, 조경의 집합체이기도 함.
공민왕의 현정릉은 생정에 만든 릉(수릉)이며 원나라 능묘조각과 비교해서는 획기적인 양식임. 이후 조선왕릉의 원형이 됨.

신라는 평지에, 고려는 산에, 조선은 구릉지에 만듬.
왕릉을 만들는 과정을 설명하는 산릉도감의궤. 왕 사후 5개월 안에 재빨리 능을 만들어야 하므로 매뉴얼이 필요.
임금의 상여. 관 안에는 90여벌의 옷을 입히고 상여꾼 100여명이 50보 정도마다 교체하여 상여를 졌다.


민화 책거리 - 정병모선생님 (경주대)

<책거리?>
책을 중심으로 하여 문방구, 서가, 도자기, 귀중한 물품 등등을 소재로 한 그림. 우리나라의 독특한 그림 양식.
옛 사람이 이르기를 "보통 사람이라면 과정에 들어 독서를 하지 않아도 떼때로 서실에 들어가 책상만 문지르고 만지기만 하여도 좋다" 라고 했다.
궁중책거리는 책가가 있고 그림이 크다. 주로 독서와 골동품이 주제.
민화 책거리는 그림이 작고 대부분 책가가 없다. 생활과 상징물을 나타낸다.
(씨가 많은 과일-다산의 상징, 포도- 넝쿨은 대대손손 자손이 이어짐을 상징.)

반도(복숭아) 3천년만에 개화 3천년만에 열매. 먹으면 만8천년을 살게 됨
연꽃(진리/불교. 길상과 기복의 의미), 물고기 (풍요), 오이/가지/고추(다산,다득남), 모란(부귀와 행복), 파랑새(청조)-서왕모의 전령

옥새

보(왕과 왕비의 도장) 와 인(왕자 이하의 도장)으로 나뉜다.
어보는 의례용 도장이며 책봉하거나 존호,시호,휘호를 올릴 때 만들고 의궤에 상세히 기록한다.
국새는 업무용 (대와/대내)
어보를 보자기에 싸서 보통에 넣고 다시 보자기로 싼다. 보통을 다시 보록에 넣고 방충효과의 의향을 넣는다.
이 때 잠그는 자물쇠 이름이 "줏대"

종묘에 가면 가운데 신위가 있고 왼쪽에 책장, 오른쪽에 보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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