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25일 날씨 봄날.
느적느적 장모댁에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왔다. 마침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뛰기가 싫다. 다음차를 기다리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뛰어올라갔으면 탈 수 있었을까'
'아냐, 어차피 늦은 걸'
'소리를 들어보니 영락없는 내쪽 방향인데! 한참을 기다려야겠군'
그 짧은 시간안에 이 많은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가니, 실은 반대쪽 차다.
정말 내가 가는쪽 방향 같았는데. 명백히 반대쪽 차였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아니, 듣고 싶어하는 쪽으로 듣는다. 내 마음 깊숙이 그 차가 내가 가는 방향일거라고 다짐을 했었나 보다.
고개를 돌려 가로등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대야미 자율방범대 라는 글씨도. 또 희끄무레 하게 보이는 산도.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특히 보는 대상물이 어떤 가치가 부여되는 대상이라면 보는 눈은 많이 왜곡된다. 누가 예뻐, 누가 착해, 누굴 사랑해, 누굴 미워해, 이런 행동은 올바른 일이야. 환경보존이 잘되어 있군..등등... 사실 이런 판단은 나의 개인적인 감정의 투사이거나, 사회적인 약속에 의한 "판단" 이다. "진실" 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을 아주 예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때 내가 예쁘다고 하는 그 사람에 대한 기준은 나다. 그 자신이 아니다. 그 자신은 예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보는 자에 따라 다르게 규정 된다.
이것은 환상이다. 인간 감정 대부분이 환상이다.
반면 가치 부여가 잘 안되는 대상물에 대해선 그나마 올바로 본다. 산은 산이고, 가로등은 가로등이다.
그러면서 대야미 역의 낡은 지붕을 보았다. 지저분하다... 앗! 또 가치 부여가 되었군. 그 녹슨 철이 지저분하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 사회의 약속인 것이다. (녹슨 철 = 깨끗하지 못한) 이라는 등식을 우린 사회에서 배워 왔다. 아니, 사물에 대해서도 우린 일일이 가치 판단을 하며 보는군....
이번엔 포스처를 본다. 글씨가 보인다. 난 순간적으로 그 글씨를 읽었다. 읽지 않으려고 해도 읽힌다. 이건 보는 게 아니다. 매번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거다.
지하철을 탔다. 광고가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 가 아니라 "다음 역은 국내역입니다. 핫메일 역은 글로벌 역입니다" 라는 글귀를 순간적으로 '읽 었 다'
글자가 계속 읽힌다. 얄궂은 영어 좀 배웠다고 글로벌 이라는 글자의 뜻까지 읽힌다.
또 순간 어제 보았던 기사가 생각이 났다. 광고전에서의 라이코스와 핫메일, 다음의 싸움 이야기..
난 결국 광고를 '보지' 못했다.
역시 인간은 사물 그대로를 보는 게 아니라 무수히 많은 계산을 하며 본다.
우리가 보는 사물은 과연 그 사물 그대로인가. 우리는 수많은 가치판단을 하며 그것이 진실인줄 안다. 그리고 그 보는 것(사실은 가치판단이지만) 이 남과 다르면 그를 납득시키려고 애쓴다. 때론 남을 바보같다고 하기도 한다.
시도해 볼 사람은 시도해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가치판단" 에 얽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지.
아무데서나 간판을 하나 보세요. 그 글자를 단지 '보세요' "읽지" 말고. 그 글자가 선과 원의 조합인 기하학 무늬로 보일 때까지. 그게 잘 되는지. 오히려 아라비아 글자는 기호로 보일 수 있어도 한글은 잘 안될걸요. 결국 있는 그대로.....
우린 머리에 지식이 꽉찬 바보죠.
토론 할까요?
느적느적 장모댁에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왔다. 마침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뛰기가 싫다. 다음차를 기다리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뛰어올라갔으면 탈 수 있었을까'
'아냐, 어차피 늦은 걸'
'소리를 들어보니 영락없는 내쪽 방향인데! 한참을 기다려야겠군'
그 짧은 시간안에 이 많은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가니, 실은 반대쪽 차다.
정말 내가 가는쪽 방향 같았는데. 명백히 반대쪽 차였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아니, 듣고 싶어하는 쪽으로 듣는다. 내 마음 깊숙이 그 차가 내가 가는 방향일거라고 다짐을 했었나 보다.
고개를 돌려 가로등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대야미 자율방범대 라는 글씨도. 또 희끄무레 하게 보이는 산도.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특히 보는 대상물이 어떤 가치가 부여되는 대상이라면 보는 눈은 많이 왜곡된다. 누가 예뻐, 누가 착해, 누굴 사랑해, 누굴 미워해, 이런 행동은 올바른 일이야. 환경보존이 잘되어 있군..등등... 사실 이런 판단은 나의 개인적인 감정의 투사이거나, 사회적인 약속에 의한 "판단" 이다. "진실" 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을 아주 예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때 내가 예쁘다고 하는 그 사람에 대한 기준은 나다. 그 자신이 아니다. 그 자신은 예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보는 자에 따라 다르게 규정 된다.
이것은 환상이다. 인간 감정 대부분이 환상이다.
반면 가치 부여가 잘 안되는 대상물에 대해선 그나마 올바로 본다. 산은 산이고, 가로등은 가로등이다.
그러면서 대야미 역의 낡은 지붕을 보았다. 지저분하다... 앗! 또 가치 부여가 되었군. 그 녹슨 철이 지저분하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 사회의 약속인 것이다. (녹슨 철 = 깨끗하지 못한) 이라는 등식을 우린 사회에서 배워 왔다. 아니, 사물에 대해서도 우린 일일이 가치 판단을 하며 보는군....
이번엔 포스처를 본다. 글씨가 보인다. 난 순간적으로 그 글씨를 읽었다. 읽지 않으려고 해도 읽힌다. 이건 보는 게 아니다. 매번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거다.
지하철을 탔다. 광고가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 가 아니라 "다음 역은 국내역입니다. 핫메일 역은 글로벌 역입니다" 라는 글귀를 순간적으로 '읽 었 다'
글자가 계속 읽힌다. 얄궂은 영어 좀 배웠다고 글로벌 이라는 글자의 뜻까지 읽힌다.
또 순간 어제 보았던 기사가 생각이 났다. 광고전에서의 라이코스와 핫메일, 다음의 싸움 이야기..
난 결국 광고를 '보지' 못했다.
역시 인간은 사물 그대로를 보는 게 아니라 무수히 많은 계산을 하며 본다.
우리가 보는 사물은 과연 그 사물 그대로인가. 우리는 수많은 가치판단을 하며 그것이 진실인줄 안다. 그리고 그 보는 것(사실은 가치판단이지만) 이 남과 다르면 그를 납득시키려고 애쓴다. 때론 남을 바보같다고 하기도 한다.
시도해 볼 사람은 시도해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가치판단" 에 얽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지.
아무데서나 간판을 하나 보세요. 그 글자를 단지 '보세요' "읽지" 말고. 그 글자가 선과 원의 조합인 기하학 무늬로 보일 때까지. 그게 잘 되는지. 오히려 아라비아 글자는 기호로 보일 수 있어도 한글은 잘 안될걸요. 결국 있는 그대로.....
우린 머리에 지식이 꽉찬 바보죠.
토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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