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고구마 늦은 파종
지난 주 학부모영농단 모임 끝나고 선두형에게 부탁했다.
"형, 황구샘께 고구마 네 단만 부탁해주세요."
일주일 후. 문득 든 생각.
'네 단? 400개? 이게 뭐야? 지 지난 주 경아랑 이야기할 때 백 개(=한단)만 심어서 비닐 씌우지 말고 풀 잡고 순 치며 관리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던 내가. 네 단? 무슨 귀신에 씌여 밭뙈기도 없는데 네 단이나 주문한 거냐?'
분명히 실수였다. 황구샘께 지난 번 흙살골드를 네 포 구해다 쓴 게 무의식에 남아서 그런 거야 분명.
고구마 한 단, 이웃 병우네 줄 거라고 쳐도 남은 게 세 단이다. 우리 밭 중 남은 곳은 열무를 심었던 동쪽 두둑. 그리고 자투리 몇 곳. 잘 나와 봐야 백이십개 쯤 심을 공간인데, 어쩌나.
토요일날 고구마순을 받아서 물에 담가 놓았고 이제 만 이틀 째니 더 둘 수도 없다.
오늘, 마침 어머니가 밭에 오셔서 열무를 뽑아 정리해 두셨다. 일을 시작해야 하는 때.
괭이로 열무 밭을 뒤집고 풀뿌리들을 솎아 고랑에 뒀다. 열무 밭 중간에 개미집이 있어 개미가 바글바글. 고무래로 살살 고구마두둑을 만드는 동안 개미들은 허겁지겁 우왕좌왕.
'언제 여기에 개미집이 생긴 거지? 골치아픈데.'
개미는 성가시다. 성깔도 있어서 건들면 보복한단다. 하지만 어쩌나. 밭 중간의 개미집인데. 무심히 일구어 두둑을 만들 수 밖에. 근사한 두둑이 만들어졌고 경아는 그 새 감자밭 위 자투리밭을 일구었다.
고구마 심는 도구로 흙 찔러 구멍 내고 순을 쑥 집어 넣은 뒤 물 주고 양쪽 흙을 모아 꼭꼭 눌렀다. 팔십여 개 심으니 열무밭 두둑은 끝. 심는 동안 집 잃은 개미들의 집중 공격 때문에 작업이 계속 중단된다. 파상적으로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특공 개미들. 마구 물기도 하고 쉴새 없이 공격한다. 징~헌 개미들에게 질려 팔다리, 바지에 개망초도 발라보고, 쑥도 발라보고 별 난리를 다 폈다. 검증되지 않은 퇴치법. 큭. 하지만 쑥을 마구 바른 후 개미가 좀 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경아가 만든 자투리밭에 순 사십여개를 심는 동안 나는 도라지밭으로 쓰이던 부분을 다시 일궜다. 이곳은 풀씨가 엄청나다. 괭이로 뒤집고 난 뒤 호미를 들고 일일이 손으로 풀을 골라내야 한다. 자잘한 풀이 많이 난 대신, 흙은 엄청 부드러워진 곳이다.
경아는 좀 다르게 심는다. 고구마도구를 흙에 푹 찌르고 물을 먼저 붓고 나서 도구를 이용해 심는다. 그렇게 하니 좀 더 쉽게 심어지는 것 같기도. 도구가 없는 나는 전통적인 방식 (호미로 구멍 파서 고구마 순을 넣는 법)으로 해 봤는데, 땅이 부드러워 무척 잘 된다. 심은 뒤에 물을 붓고 호미등으로 꾹꾹 흙을 눌러 줬다. 새로 만든 두둑에 모두 다 심으니 거의 두단이 다 심어졌다.
아까 어머니가 가기 전에 말씀하신 게 있다.
"마늘, 얼마잖아 수확할 거니까 마늘 사이사이 심어 봐라. 마늘 수확하면서 땅도 파헤쳐지고 북도 주면 되잖냐."
아, 마늘사이에 심는다? 아이디어 좋다.
마늘 사이엔 우리가 풀을 잘 잡아 줬기 때문에 공간이 있다. 어차피 마늘 수확할 때가 다 되어 마늘쫑이나 뽑아 먹으면 되는데. 마늘 밭이 넓기도 하고. 나머지 백여 개 남짓은 마늘 사이사이에 쑥쑥 심었다. 마늘밭에 심을 즈음 해는 어둑어둑. 사방 귓가에 왱왱거리는 징~한 산모기들. 문득 하늘을 보니 새까만 모기떼들. 헉!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심고 또 심고 또 심고. 거의 피아간 구분이 안될 정도가 되어 세단을 다 심었다. 인간승리다.
아까 마송 통진농약사 (981-9161)에서 고구마 심는 도구를 살까말까 하다 4천원에 사왔다. 겨우 3백갠데 뭘 사나 싶었다가 그냥 덜컥 샀다. 하지만 잘 샀다. 그게 없었으면 아마 오늘 일은 절반도 못했을걸.
경아가 만든 쪽밭
가운데는 개미집입니다
마늘 밭 사이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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