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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10~11 필리핀,몽골

03. 이동 주택, 게르

by Anakii 2011. 9. 6.
지프로 울란바타르를 떠나면 망망 초원에 점점이 놓인 게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도시라고 부르는 '마을'은 지프로 두세 시간을 달려야 겨우 나오고 길 가에 보이는 인가란 저 멀리 가끔씩 보이는 게르 뿐이다.

게르는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며 아름답다.

게르의 중앙엔 난방과 취사용으로 두루 쓰이는 난로가 있고 난로가 있는 곳의 천장은 원형으로 개방되어 있다. 원형 구멍의 반은 천막으로 막아 두고 나머지 반원 부분에 수시로 빼고 끼우는 방식의 연통이 들어간다.
항상 천장의 절반은 뚫려 있으므로 날이 맑으면 게르 안에 누워서 언제나 하늘을 볼 수 있다. 특히 한밤중 밝은 달빛이 게르의 천장을 뚫고 게르내부를 비출 때의 분위기는 처연하게 아름답다.

비가 올 때는 나머지 반원 부분에 접어 둔 천막을 닫아 비를 막는다.  어느 게르나 열고 닫는 천막은 끈으로 연결해 두어 언제든지 쉽게 열고 닫을 수 있게 해 두었다.
창문이 없는 게르에서 이 천장 중안의 반원 부분은 환기와 빛과 날씨 변화. 혹은 집 가까이 있는 가축들의 울음소리와 손님 발자국 소리. 멀리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가족들이 기척을 감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부분이라 한다.


게르는 나무와 천으로 만들었는데 자바라 처럼 접혀지는 나무울타리를 둥글게 치고 내부의 원형 돔을 지탱하게 하는 서까래에 해당하는 지붕 쪽에는 나무막대기를 얹는다. 겉으로 보여지는 두꺼운 흰 천은 광목이며 그 안에 비와 추위를 막을 수 있게 방수포를 둘렀다. 전통적인 게르는 짐승의 털이나 울 같은 보온 소재를 넣으나 요즘은 간단히 화학섬유로 된 방수포를 쓰고 있다.
1시간 안에 허물거나 지을 수 있는 게르, 옛날엔 낙타에 게르 부품을 실어 이동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의 중고 1톤 포터 트럭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듯, 게르 주변에 마치 말처럼 주차되어 있는 포터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황제가 기거했던 게르는 수백 마리의 표범가죽으로 덮었다는데 복드항 겨울 궁전 박물관에 가면 그 형태를 볼 수 있다. 너른 초원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한두서너 채의 게르는 셔터만 누르면 바로 작품이 될 정도로 아름답다. 제 존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 주변 여건에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아름다움. 그게 게르의 진가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게르에 꼭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 있다.  바로 태양광판과 위성 안테나. 웬만한 게르 안에는 이를 이용해 TV, 라디오, 오디오, 휴대폰 충전 장치들을 준비해 두고 있어 문명생활(?)을 누리는 데 별 문제가 없다. 가까운 도시에 가려면 서너 시간에 걸리는 망망 대 초원 한 가운데 세워진 게르에서 방영되는 한국드라마.

글쎄, 그런 것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스스로의 처지를 비하하게 만들지는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