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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2012/01/25 봉하→고성→여수→김포

by Anakii 2012. 1. 26.

봉하마을. 분노.

아침 9시에 기장에서 출발했다. 동래, 만덕 터널을 거치니 곧바로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다. 남해 고속도로의 진례나들목으로 나와 봉하마을로 향한다. 봉하마을까지는 이정표가 충실하다. 생가 가는 길 가에는 익히 보던 노란 바람개비 힘차게 돌고 있었다. 노무현대통령 생가에는 10시10분에 도착. 안내소에서 팸플릿 하나 빼 들고 생가, 기념관, 묘역을 둘러보았다. 

비록 노무현대통령이 생전에 했던 통치행위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주범들, 그리고 그가 죽음을 선택하게끔 막다른 곳 까지 몰아 세웠던 주류 집단에게 느끼는 분노가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절대 그들을 용서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그들 중 아무도 용서를 빌지 않고 있잖은가. 
지나왔거나 앞으로 올 수 차례의 민주정부 시기 중, 한번쯤은 그들이 시민에게 했던 "그 방식 그대로" 단죄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묘역에서 깊은 마음을 담아 합장하고 묘소를 나왔다.  

고성. 뜻밖의 볼 거리

12시, 고성군 송학동고분군. 처음 보는 가야고분이다. 너른 분지에 포근하게 안착한 느낌이다. 이례적으로 많은 수의 독수리떼가 상공을 마치 연처럼 노닌다. 짙푸른하늘과 누런잔디로 덮인 고분군 그리고 검은독수리. 청,황,흑색의 조화.


12시 반. 옛 담장이 아름다운 학동마을에 들렀다. 이곳 역시 우연히 지나친 곳. 납작한 돌들이 많은 지형이다 보니 담장 역시 켜켜이 쌓아 올린 모습이 지형을 꼭 닮았다. 고택들도 제법 있나 본데 문이 열려 있는 매사 고택을 살짝 찍고 나왔다. 산책하면서 노닐기에 좋지만 기온이 워낙 낮아 걷기엔 힘들다. 

1시. 해안가를 따라 학동 굴 양식 마을을 지나다 보니 저 멀리 보이는 해안산책로가 너무 예쁘다. 섬을 둘러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섬 주위는 굴 양식장이다. 잔잔하고 맑은 물이 마치 호수 같은 양식장. 아주 작은 마을인데도 산책로는 무척 예쁘게 만들어져 있고 산책로 끝에는 야영장과 모래톱으로 연결된 작은 섬도 있다. 날씨만 좀 따뜻했다면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참 좋았을텐데. 섬이 바람을 막아주는 남쪽면을 제외하고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니 걷기에는 꽤 힘들다. 간간이 해가 구름을 벗어났을 때를 노려 사진을 찍었을 뿐.


 1시20분. 고성공룡박물관에 도착했으나 휴관이라 지나쳐 왔던 고성 백악기 테마파크로 이동했다. 
테마파크라기 보담, 공룡발자국 산책로라 하는 게 더 옳다. 시간이 있으면 차를 해변에 세우고 공룡 발자국 유적지 산책로를 따라 공룡박물관까지 가서 둥글게 멀리 돌아오는 코스를 따르면 좋겠다. 해안가에는 앙증맞은 공룡발자국이 너른 돌 판위에 찍혔다. 발자국이 진흙 위에 찍혔다가 화산폭발에 따른 재에 덮여 굳혀진 후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밖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2시10분. 삼천포항에 도착했다. 건어물점에서 쥐포(중국산,400g 1만원),명태알포(러시아산,400g 1만원),오징어(국산,20마리35천원)를 사서 트렁크에 넣고 3번국도를 타고 해안가로 진행하다 사천대교를 건넜다. 다도해의 풍경은 잔잔한 호수다.

여수. 절반의 만족

원래, 점심으로 여수의 삼치회를 먹자는 내심이었는데, 벌써 시간이 너무 흘렀다. 2시 반이다. 국도를 버리고 고속도로로 가야할 것 같다.
곧바로 곤양나들목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내 달렸다. 광양 나들목에서 나왔지만 여수까지는 아직 멀다. 여수란 곳이 중심 도로에서 너무나 깊게 해안가 쪽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 통영(거제), 남해, 여수가 모두 주 도로에서 방울마냥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양새다. 

3시 50분. 미리 봐 두었던 삼치회 전문점 '선월'에 도착했다. 삼치회에 삼치구이 등등 삼치 풀세트를 내 놓는다는 곳. 하지만, 이곳, 오늘 삼치가 없어서 휴업상태다. 청소만 하시고 계시는 중. 이럴 수가.

두 번째 선택. 여수 여객 터미널 앞의 대성식당. 몇년 전 여수 여행 때 우연히 가서 대만족한 곳이다. 도착한 시간은 네시. 이곳에서 삼치회를 시켰다.  

하지만.
요즘 삼치가 귀해 가격이 무척 높단다. 원래 2인용 3만원 짜리를 시켜 먹으려 했지만 5만원 짜리 밖에 안된다고 한다.

아...

삼치회 하나 먹으러 엄청난 탄소와 시간을 배출해 가며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것인가.

5만원짜리 삼치회. 기본 반찬은 말 그대로 '기본' 급이었으나 삼치회는 매우 고급 부위가 나왔다. 기름진 뱃살 중심이었는데 한 점을 김 위에 올린 배추에 싸서 간장을 찍어 한 입에 넣어 보니, 달콤하기가 설탕이다. 회에서 어찌 이런 맛이?
회로 배를 채우고 있자니 회는 금세 동이난다. 무척 많았었는데! 


곧 이어 식사로 공기밥과 삼치 맑은국이 나왔다. 맑은국? 아니, 이건 삼계탕인가. 기름기가 엄청나다. 그런데 깔끔하다. 삼치 껍질을 폭폭 삶았는데, 그리고 기름이 흥건한데도 깔끔하다. 뭐 이런 엄청난 요리가 있나? 삼치 껍질 맛은 거의 버터와 같다. 물론 국물 맛은 짭잘한 버터탕. 최고급 음식이긴 하나 세 명이서 소화하기엔 버겁다. 아무래도 이건 4인분 이상이다. 

아까운 럭셔리 삼치껍질탕을 차마 남길 수 없어 겨우겨우 먹고 나오니, 마눌님과 해안이의 속은 많이 버거운 듯 하다. 아래는 윙스푼에 남긴 내 평.

삼치회로 유명한 대성식당.
하지만  올 겨울 삼치가 귀하긴 귀하나 봅니다. 삼치 가격이 너무 올라 3,4만원 짜리는 안된다 하셔서 5만원짜리로 시켜 먹었습니다.

1. 기본 찬 |
5만원짜리 상에 걸맞지 않게 평이했습니다. 굴,새우,작은꽃게 등등등. 명절 직후라 제대로 못 내셨다 하지만 신선도가 다소 떨어지는 반찬입니다.

2. 메인인 삼치회.  |
매우 고급 부위가 준비되었습니다. 참치 뱃살을 보는 듯 흰 지방 부위가 가득입니다.
다만 활어는 아니고 선어입니다. 약간 무르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맨 김에 배추 한 쪽 얹고 생와사비와 간장에 적당히 적신 회 한 점을 올려 먹어 보니... 환상입니다. 삼치에 꿀 넣었나요? 속 안 좋은 딸내미까지 회만 쏙쏙 빼 먹을 만큼 최고의 맛입니다. 배불리 먹다 보니 어느새 회는 사라졌네요.

3. 지리탕(맑은탕) |
삼치 껍질을 주 재료로 한 탕이 나왔습니다. 노오란 기름이 뜨네요. 삼치에서 나온 기름. 그런데 깔끔합니다.
이런 탕은 처음입니다. 정통 일식을 먹는 듯. 특히 삼치 껍질은 완전 버터입니다. 하나도 비리지 않지만 엄청 느끼합니다. ㅋㅋ
기름진 삼치회에 이은 기름진 탕이라서 먹기에 힘들 정도였지만 원 재료가 너무나도 우수하여 감사히 먹습니다. 
회나 탕 둘 다 최고급입니다.

그러나 속이 편치 않은 우리 세 명이 먹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미식가 다섯명 정도가 조금씩 맛 보면서 먹으면 적당할 분량을, 배 채우려 하는 세 명이 남김 없이 먹으려 하다 보니 배탈이 났네요. 

전국적인 맛집이 되려면 살짝 맛만 보고 나올 사람들을 위한 메뉴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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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마다 않고 그 맛집까지 기어이 간 소비자의 마음이라면, 그 맛집의 준비 또한 충분해야 할 것입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이 여수에 있는 그 식당을 일부러 찾아 갔다 한다면 그만큼의 기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료가 없는 대로 모자란 상 차림으로 먼길 찾아 온 손님을 맞으면, 그 집은 더 이상 소문난 맛집이라 할 수 없겠지요.

예기치 않은 귀환.


삼치회로 엄청 배가 부르다. 원래 해남 지역의 하나로마트에 들러 진도홍주 PET 를 사려고 계획했지만 남은 길은 삼백리, 해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한시간. 이건, 안된다 싶다. 그리고 날은 무척이나 춥다. 
곧바로 귀환 결정을 내렸다. 이 대로 숙소에 가 봤자 잠 자고 일어나면 아침부터 줄창 귀환해야 하는 일정이라 조금 일찍 올라와서 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수에서 곧장 통하는 고속도로도 있으니까.

여수 외곽에서 주유를 하고 6시 30분 경 동순천 나들목을 통과했다. 27번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구례(지리산)가 지나가고 남원 가까이 가 편의점에 화장실 하나인 초미니 휴게소, 춘향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 이름도 예쁘고 규모도 귀엽다.

내쳐 달려 20번 익산장수고속도로, 25번 호남고속도로, 논산천안고속도로, 1번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40번 안성평택고속도로, 15번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치니 익숙한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만난다. 천안에 와서야 겨우 약간 정체되는 구간을 만났을 뿐 거의 전 구간이 쌩쌩길이라서 김포 고촌에 도착한 게 10시 30분. 겨우 4시간에 그 많은 고속도로를 주파해서 왔다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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