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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2010/07/27 부산→김포

by Anakii 2010. 7. 28.

 아버지댁을 출발하는 날. 경아는 아침 일찍 분주하게 김밥을 싼다. 절여놓았던 오이를 어제 밤에 내가 시간 맞춰 갈무리해 둬야 했었는데 잊고 자서 아침에 보니 폭삭 셨더란다. 근데, 시면 입맛을 돋구잖아? 계란, 어묵, 맛살, 햄 등등 느끼한 거 왕창 들어갈때는 신 것도 괜찮지 싶다. 정성들여 싸 놓은 김밥 꼬다리를 한 입 삼키니 새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무려 아홉개나 싸서 두개 정도를 아버지 드시라고 썰어 뒀다.

좀 일찍 출발한다는 것이 늦장을 부리다 8시반에나 출발했다.  배웅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안쓰럽다. 우리가 내려와 있는 게 당신께 별 활력이 될 건 없긴 하지만, 사실 번거롭기만 하겠지만, 글쎄...

 

기장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은 7번 국도와 31번 국도의 두 가지길이 있는데 7번 국도는 울산,경주를 거쳐 빠르게 진입하는 내륙길이고, 31번은 해안가 따라서 꼬불꼬불 가는 동해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드라이브길이다. 포항을 지나서는 7번 국도가 해안을 따라서 강릉으로 연결되며 계속 올라가 금강산 육로관광길과 이어진다. 이 도로들을 따라 펼쳐지는 동쪽 경치는 마치 남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열차노선의 왼쪽 창에서 펼쳐지는 풍경과 같다.  스노클링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한껏 드는 곳. 우린 해안도로를 따라 대왕암, 구룡포를 지나 포스코의 굴뚝을 좌우로 하며 죽도시장에 도착했다.


죽도시장 초입에서 상인분께 물회 먹는 곳을 물으니 이래 말씀하시네.

"저기 모퉁이에서 돌아서 쭉 가 보면 이명박대통령이 와서 드셨다는 동해 횟집이 나오는데 거 가지 마시고요 좀 더 가면 수향횟집이라고 있는데 거가 좀 소박하면서 잘 해 줄낍니다"

물어보는 게 최고다.

그래도 못 찾아 물어물어 찾아간 수향횟집. 경아가 물회 2인분을 시켜 놓았댄다. 공기밥 포함. 시원한 에어컨 바람 쏘이니 시장 헤메며 열받은 몸이 삭 식는다.

"오징어랑 우럭이 좋은데 뭘로 드릴까요?" / "우럭 주세요"

"밥은 하나만 주세요. 저희들이 식사를 하고 와서 많이 못 먹거든요" / "예"

먼저 나온 밑반찬, 많지는 않지만 맛있고 정갈하고, 이내 나온 물회는 육수가 없이 비빔처럼 나온다. 그리고 고소하며 담백하다. 원래 물회는 이렇게 나오는 건데, 다른 데선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육수를 붓거나 새콤달콤하게 맞춘다고. 이해가 간다, 비슷한 일을 우리나라 냉면의 변천에서 익히 봐 왔으니까.

먼저 나온 물회 하나를 세명이서 물 넣고 비빔장 더 넣어 가며 아껴 먹다 보니 밥을 더 먹을 것 같아 밥 하나 더 시키고 반찬 더 시켜서 먹다 해 보니 슬슬 배는 불러 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두 번째 물회가 안나온다.

기다리다 아주머니께 여쭤 보니 1인분만 주문 들어갔다네? 알고 보니, 우리가 식사를 하고 왔다며 밥을 하나만 달라고 하니까 사장님이 알아서 1인분만 마련하셨다 한다.

아껴 먹은 물회, 하나 더 먹고 싶긴 한데 먼저 밥을 많이 먹어 배부른 상태라서  그냥 계산하고 나왔는데 사실, 아쉽다. 포항까지 두시간에 걸쳐 갔는데 저 맛있는 물회를 하나 가지고 세 명이 아껴가며 먹어야 했다니... 하지만 사장님의 배려는 무척 놀랍지 않나? 소비자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진정한 프로 요리사의 자세!



포항에서부터는 7번 국도를 타며 동해안의 절경을 감상하다 보니 멈춰 서고 싶은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하지만 작렬하는 태양 아래 어디 해수욕장에 가나. 

하지만 장사해수욕장은 예쁘기도 하고 차를 세울 그늘도 있어 사진이나 찍자 하고 나 혼자 나갔다. 백사장을 걷다보니 슬리퍼에 모래가 찰것 같아 벗고, 들고 ~~~ 앗 뜨거~ 모래가 장난이 아니다. 팔짝팔짝 뛰면서 해변까지 오며 든 생각.

'에이, 이러면 바다에 발은 담가야 하잖아... 일단 담그고 씻지 뭐.' 그런데 해변에 도착한 순간,

"도와주세요". "아이가 떠내려 가요!" "도와주세요!!"

해변에서 저기 5-6미터 앞 보트에 탄 아이는 점점 크게 우는데 튜브를 가진 아버지와 딸로 보이는 이들이 내게 사정을 한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퍼뜩 든 순차적인 생각 몇 가지.

'아이가 바로 앞에 있는데 튜브 가지고 헤엄치고 갔다오면 되지 왜 나에게?' → '아, 동해는 갑자기 깊어지지! 그리고 해류가 바깥쪽 방향인데다, 저 아저씬 헤엄을 전혀 못치나 보다. 일단 가자.'

그 동안에 아이는 한 1미터 정도 더 나가고 있다. 어라, 이거 문제 있는데? 일단 윗옷만 벗고 튜브 빌려 들어갔다. 사실 나도 헤엄 잘 못친다. 개헤엄... 헤엄치며 다가가 찬찬히 아이를 진정시키고, 보트를 손으로 잡은 뒤 아이가 갖고 있던 노를 한 손으로 기를 쓰고 저었다. 조금씩 조금씩 해변으로 나오다 이내 발이 닿는 지점까지 왔다. 

아이 등 좀 토닥거려 주고 나와 화장실 앞에서 발 씻고 화장실 안에서 옷 갈아입으려다 보니 타올이라도 있어얄 것 같아서 차로 가는데 경아가 아깐 문 잠겨있던 샤워장을 쥔 청년을 시켜 문을 열고 있다. 손에 새 옷을 쥔 채로. 

와! 덕분에 깨끗이 샤워하고 바지, 팬티 빨고 머리도 대충 감고 나왔다. 뽀송한데. 나중에 경아에게 들은 말. 차 앞에 있던 아짐씨가 이래 말하더란다.

"저기 아가 왜 자꾸 우노?  먼 일 있나? 아, 아줌마가 하나 구하러 들가네?"

경아는 "저기 제 남편이예요!"라고 말했고.

머리를 묶은 나는 멀리서 보면 난 영락없는 아줌마.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무대인 주왕산 주산지에 가려고 영덕에서 청송으로 길을 잡았다. 경북을 누비고 다니는 건 처음인데, 정치적으로 무척 동의하기 힘든 경북의 정서와는 판이하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할 말을 잊게 한다. 청송이 특히 예쁜 건지는 몰라도 배롱나무가 즐비한 도로변도 아름답지만 멀리 팔각산, 주왕산의 봉우리들이 겹겹이 펼쳐진 장면은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청송은 사과로 무척 유명하고 매년 주문해 먹는 새롬농원의 맛난 사과도 이곳 청송산이다. 사과와 고추로 유명한 도시답게 온통 빨간색으로 칠한 시내버스, 그리고 앙증맞은 사과 모양의 버스정류장이 눈에 띈다.

 

주산지 주차장에서 5분쯤 걸어 주산지입구에 도착하면 작은 계곡이 있다. 발 담그고 피서하기에 정말 좋은 곳. 짙은 계곡내음이 시원한 그곳에서 김밥을 먹고 7-8분 산책하니 주산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에서는 꽤 크게 보였지만 그리 크지는 않은데 1720년에 조성된 인공 저수지라 한다. 300년의 세월이 자나니 인공의 흔적은 사라지고, 산 속 깊이 숨겨진 비밀의 호수같기만 하다. 물에 잠긴 왕버들의 기이한 자태.

 

청송을 지나 안동 중심부를 거쳐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점차 서쪽으로 향하니 산세도 부드러워진다. 풍경에서 볼 것은 없지만 바로 그 점이 사람이 살기 좋아진다는 점일테지. 하회마을 주차장에 차를 놓고 장터인가 하는 곳을 지나며 민속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회마을은 매표소에서 표 끊고 셔틀을 타거나 10여분을 걸어들어가야 한다는데, 차량을 통제했다는 점에 동감한다. 민속촌과는 달리 실제 거주하는 분들이 계신 이곳은 좀 더 생기있는 풍경을 바랬던 우리로서는 뭔가 어정쩡하다는 느낌이었다. 25년전 경아가 왔을 때와는 엄청 달라진 분위기랜다. 민속촌은 아니지만 세트장스러운 분위기. 사실은 이곳에 사시는 분들이 가장 불편하겠지만. 30여분 정도 휘휘 둘러본 뒤 셔틀을 타지 않고 걸어나왔다. 하지만 곧 후회했다. 그렇지, 지금은 푹푹 찌는 한여름이니까. 시골인데도 이리 더우면 이곳 분들은 어찌 살까 싶다.

 

차로 병산서원까지 갈 수 있대서 간 길 중 2km정도가 비포장이어서 조심스러웠다. 14살이 된 애마 찰스가 얼마전에도 길 섶 도랑에 빠지는 바람에 타이어를 바꿨으니까. 7시 넘어서 도착해 보니 아쁠싸, 문이 잠겼다. 사원 누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이 일품이라던데. 서원 주변만 구경하다 차를 돌렸다.


돌아오는 길엔 눈여겨 봐 두었던 지름길(농로)이 있어서 조심스레 그 길로 향했다. 진입하고서도 길이 맞나 두리번거린다. 어디선가 나타난 자전거타는 아저씨께 물으니 우리가 가는 방향쪽으로 가면 안동 가는 길과 연결된다네. 출발했는데 저런! 쭉 보기와는 다르게 길 중간중간이 심하게 패여 있는거다. 비포장 2km를 조심스레 지나왔는데 이게 뭐람? 패인 곳을 잘못들어서면 차에도 손상이 올 듯. 우리 찰스 차고가 좀 높아서 다행이긴 한데, 일반 승용차는 접근 불가다. 한참을 악셀과 브레이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오다 보니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는 오른 쪽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경아에게 운전대를 인계했다.

 

조그마한 풍산읍 맛난 중국집에서 드물게 속 편안한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출발한 게 8시 30분.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예천,영주,단양,풍기 등등 흔히 말하던 관광명소들을 지나 원주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탄다. 밤10시가 넘었건만 영동고속도로에는 차가 많다. 심지어 여주휴게소는 차로 밀려 진입로부터 줄줄이 거북이걸음을 한다. 덕평휴게소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몸을 추스리고  나서 내가 운전대를 건네 받아 1시간20분만에 김포집에 도착했다.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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