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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18 북유럽, 발리

2018발리 5.길리 메노 (8.5) 지진.

by Anakii 2018. 8. 16.

8.5(일) 길리 메노

아침 7시에 일어난다. 이른 아침에는 사슴처럼 예쁜 소들이 방울 소리를 내며 풀을 뜯으러 주변을 돌아 다닌다. 오늘은 귀여운 새끼 둘을 거느리고 숫소가 왔다. 남은 파파야를 잘라 통에 넣었다. 만화를 보다가 8시 반에 길리 가든에 가서 자전거를 반납한다. 내일 아침 길리 트라왕안에 바로 가는 개인 보트를 섭외한다. 북부에서 바로 떠나면 가깝다. 짐을 메고 걷지 않아도 된다. 오피스에 전화했더니 내일 스피드 보트는 없다. 7시 반까지 오란다. 직원은 300에 보트가 간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주문하고 잘 먹었다. 

북쪽 해안 투어 오피스에 가서 보트 가격을 물었다. 400에 간다고 한다. 그냥 길리 가든에서 해야겠다. 100을 예약금으로 걸었다. 스웨덴 가족은 렘봉안으로 가려 했으나 보트가 안 떠서 아이르에 들어간다.

어제처럼 항구 부근에 가서 놀거다. 간식을 가방에 넣었다. 9시 40분에 장비를 챙겨서 걸어간다. 팩맨 와룽에서 스프링 롤과 코코넛 튀김을 먹고 나시 짬뿌르 2개는 도시락으로 주문한다. 한국사람이 와 있다. 3주째 머물고 있단다. 섬 중 여기가 가장 한적하고 좋다고. 아이르에는 3일 있었단다. 튀김과 롤은 맛있게 먹었다. 사람들이 적을 때 시키려고 아침에 좀 무리하게 먹었다. 

11시에 항구를 지나 어제 놀았던 장소에 자리를 폈다. 물에 들어간다. 역시 물고기가 많다. 조류는 꽤 세다. 1시간 이상 놀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바람이 세서  물에서 나오면 추워서 앉아 있기 힘들다. 옷을 최대한 벗어서 말린다. 과일과 과자를 먹는다. 오늘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적다. 섬 동쪽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이쪽 바다는 얕고 들어가도 볼 것이 없다. 물이 빠져서 산호 무더기가 쌓여있는 미니 섬도 있다. 남편이 혼자 들어갔다 왔다. 볼 만 하다고 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소피 와룽은 쉬고 있었다. 

우리가 늘 자리를 펴던 북동쪽 해변에 짐을 놓고 들어간다. 전번에는 깊이 못 갔기 때문에 더 들어가 본다. 안에는 살아있는 산호들이 있었다. 그리고 꽤 예쁘다. 역시 물살이 세서 오래 있을 수 없다. 밖으로 나온다. 3시가 넘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젖은 옷들과 짠물이 든 것은 모두 물을 먹여서 여기 저기에 널어 놓았다. 방에 앉아 팩맨의 나시 짬뿌르를 펼쳐서 먹는다. 양도 많고 다양한 반찬에 맛이 좋다. 내일 아침에도 먹고 가면 좋겠다. 그런데 밤에 사 놓으면 채소가 상할 것 같다. 베란다에서 후식으로 파인애플까지 맛있게 먹었다. 5시 반까지 남편은 우붓의 래프팅, 요리 교실을 검색하고 나는 만화를 보았다. 

해가 지는 것을 보러 나간다. 소피 와룽의 빈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문을 열었다. 그 옆의 나무 둥치에 앉았다. 오늘은 아궁 화산도 안보이고 수평선에 구름이 끼었다. 우리는 나무 위에 부서진 산호로 RHYU 하트 PARK 같은 것도 만든다. 아까 해변에 산호로 VICKY라고 한 것을 보아서 한번 해봤다. 신혼여행 때도 안하는 것을 25년이 된 지금 한다고 서로 웃었다. 남이 보면 재혼 여행 같겠다고. 큰 별들이 떴다. 그런데 하늘에 구름이 많아 별 보기는 포기한다. 

팩맨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소피 와룽 옆의 샛길로 들어가서 남의 리조트를 지나 이상한 길로만 다닌다. 이 길들을 남편이 다 검색하여 간다. 참 신기한 세상이다. 어두워서 길이 보이지도 않는다. 지지 와룽에서 로컬 바나나 10개를 산다. 2개를 먹었다. 싱싱한 편인데도 맛이 좋다.

팩맨에서 생선 사테와 생선 커리, 밥, 나시 짬뿌르 하나를 시킨다. 손님이 적당히 있다. 7시 반이 되었다. 많이 피곤하고 졸립다. 신을 벗고 양반다리를 하며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때 무시무시한 진동이 왔다. 의자에서 떨어지며 고꾸라 질 때 옆에 있던 남편이 빠르게 나가는 듯 보인다. 신을 챙길 수가 없다. 비틀거리며 나가다가 바나나 봉지도 놓친다. 카운터 의자에 놓인 것을 못 잡는다. 밖에 나와 남편을 찾았다. 다행히 나와서 앉아 있다. 

지진의 흔들림이 대단했다.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사람, 바닥에 엎드려 우는 사람, 패닉에 빠진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다. 땅바닥에 앉아도 여진이 몇 번 왔다. 모두 건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겨우 들어가 바나나와 신발을 얼른 가져왔다. 식당 바닥 시멘트가 갈라졌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사람을 팽개칠 정도라니. 힘이 대단했다. 부딪치면서 발에 몇 군데 상처가 났다. 일주일 전 지진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지진을 2번 체험을 한 사람도 있다. 통신이 끊기고 정전이 된 것 같다. 그 사이에도 재빠르게 검색하는 외국인이 있다. 역시 롬복 북동쪽에서 7.0의 지진이 났다. 섬까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대단하다. 전번 보다 흔들림이 셌다고 한다. 

한참 앉아 있다가 식당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숙소로 간다. 어두운 길에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한참 걸어가는데 앞쪽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손에 랜턴을 들고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쓰나미 경보가 내려서 섬의 가운데로 이동해야 된다고 한다. 우리도 같이 다시 거꾸로 걷는다. 길리 메노는 작고 평평한 섬이다. 쓰나미가 오면 그냥 한번에 넘는다. 나무 위로 기어올라 가야 하나 싶다. 여기는 높은 건물도 없다. 기가 막히다. 

거꾸로 걷다가 남편이 우연히 샤먼아저씨가 앞에 가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를 보고 놀라신다. 반가워서 서로 부둥켜 안으며 셋이 걸었다. 아저씨는 집에 있다가 얼굴을 많이 부딪쳤다고 한다. 맨발로 걷고 계신다. 모스크로 가는가 했는데 어떤 집 옆의 큰 공터에 모였다. 아저씨는 오두막에 앉는 것도 불안한지 우릴 데리고 멀찌감치 평지에 앉는다. 계속 아잔을 낭송하신다. 오두막 앞에 높은 물탑이 있다. 그게 우리에게 쓰러질 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한참 앉아 있었다. 아저씨의 전화 배터리가 다 되어서 남편이 배터리를 드렸다. 여진이 가끔 온다. 우리는 무조건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 

1시간 쯤 후에 쓰나미 경보가 해제되었다. 아저씨가 우릴 데리고 가신다. 집으로 가나 싶었는데 다른 공터에 가서 앉아 있게 되었다. 집은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호주 아줌마와 몇몇 현지인이 있었다. 이 분들은 큰 물통과 빈 페트병도 여러개 가지고 있었다. 쓰나미가 오면 붙잡고 있으려고 했나보다. 롬복에 있는 아저씨의 가족들이 계속 전화를 한다. 아저씨에게 "Go home!'을 몇 번 얘기했다. 지진도 덜하니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우리 2층집이 위험하면 스웨덴 가족이 쓰던 집에 있으려고 했다. 

아저씨가 가자고 하면서 데려간 곳은 또다시 집이 아니었다. 넓은 공터를 가진 다른 집에 갔다. 사람들이 이불을 챙겨와 잘 준비를 한다. 아저씨가 어느새 집에 가서 내 싸롱을 들고 왔다. 덮고 자라고 하는 듯 하다. 

앉아 있다가 아저씨에게 우리 짐을 가지러 가자고 했다. 집의 뒷편 문으로 들어간다. 대형 물통이 떨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숙소의 화장실이 아예 무너져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집 뒤가 날아갔다. 잠시 우리 집인가 눈을 의심했다. 저 안에 있었다면 어쩔뻔 했나 싶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기울어져 뒤틀렸다. 정말 무시무시하다. 짐을 꺼내야 하기에 랜턴 3개를 서로 비추며 조심해서 이상해진 계단을 오른다. 2층 방 안도 기울었다. 일단 살살 짐들을 있는데로 침대 위에 올리고 가방에 꾸겨 넣었다. 덮을 타올도 챙겼다. 언제 기울어질 지 모른다. 대충 집어 넣는 사이 아저씨가 사다리를 대어 놓았다. 그래도 계단으로 조심해서 내려왔다.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다시 그 집에 와서 마당에 눕는다. 어저씨가 베게 여러 개와 덮을 것들을 가져 오신다. 셋이 누워 자기로 한다.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나대지에 가서 볼 일도 보고 자리에 눕는다. 어느새 하늘에는 별이 휘황찬란하다. 이렇게 된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바람도 많이 불고 쉽게 잠이 안온다. 밖에서 자기에는 좀 춥다. 계속 여진이 온다. 바닥이 붕 떠 있는 듯 이상하다. 땅이 이렇게 계속 흔들릴 수 있다니. 배를 탄 것 같다. 그래도 다치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아저씨를 만나 같이 다닐 수 있어 그나마 운이 좋았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본다.

길리 보트 예약 100, 팩맨 점심 100 : 나시 짬뿌르 2개 30, 치킨 스프링 롤 30, 코코넛 튀김 20, 파인애플 20, 바나나 20

Anakii's 경험치, 지진

7시 반 경, 자주 가던 현지인 식당에 들러 코코넛튀김, 생선꼬치구이, 치킨 커리를 시켰다. 코코넛 튀김은 10분 내로 나왔다. 두 번 쨰 먹는 건데, 이건 영락없이 코코넛 빵이다. 내일 새벽 6시 반 배로 트라왕간에 들러 8시 배로 발리로 돌아가야 하니 이 식당에서 나시 짬뿌르 도시락을 쌀까 생각하다 12시간 이상을 냉장고 없이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었는데 이 코코넛 빵은 12시간 버텨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먹고 있었다.

식당 아저씨는 이제 우리 요리를 하나 보다. 커리를 조리하는 것 같다, 생선을 굽는 냄새도 난다. 이제 7일을 보냈던 이곳 길리섬들과 이별이다. 

순간, 흔들린다. 처음엔 뭐지? 하다 1~2초 안에 지진이다! 란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서 움직이려 하는데 점점 진동이 세져서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의자에도 부딪히면서 밖으로 나왔다. 아직 땅이 흔들린다. 주변엔 20여명의 관광객과 현지인이 함께 모였고 일부는 울음을 떠뜨린다. 땅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건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맞다, 경아씨. 마눌님을 생각지 않고 그냥 나왔다. 경아씨의 부름에 곧바로 답했다. 서로 안도하는 우리. 이건 1분 안에 일어난 일이다.

경아씨는 발목 부근 살짝 긁히고 찍혔다. 좀 있다 숙소 가서 약 발라야겠다.

함께 바닥에 있자니 또다른 진동이다.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경아가 소리친다. 다른 이들도 함께 앉으라고 소리친다. 전화는 불통이지만 몇몇 관광객 전화는 통해서 지진 정보를 검색할 수 있었다. 진도 7이다. 지난 주 6.4의 지진이 났던 롬복 북부다.

한 청년이 쓰러져 있다. 심장 이상을 일으킨 것 같은데 몇몇이 붙어서 살피니 정신을 차린다. 우리 식당은 목조 기둥이라 무너지진 않았지만 식당 앞 벽돌 건물은 무너졌다. 우리 숙소는 전통 가옥이니 이상이 없을 것 같아서 10여분 쯤  있다가 플래시를 켜고 숙소 쪽으로 향했다.

섬 전체 정전이다. 하지만 원래 섬에 불빛이 적고 자체 발전 전력들이 있어서 아주 어둡지는 않다. 간간이 몇 몇 집에 불빛이 보인다.

숙소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는데 사람들이 우루르 반대쪽에서부터 온다. 한 남자가 말했다

"그리로 가면 안돼, Wrong way야. 쓰나미를 대피하고 있어, 쓰나미 경보가 났어"

맞다, 길리 메노섬의 표고는 2미터도 안된다. 쓰나미 한 방이면 섬 자체가 쓸려나간다. 롬복 북부 지역 지진이라 롬복 서부 해안가인 이곳이 쓰나미 영향권은 아니겠으나 이 섬은 옆을 지나가는 쓰나미 파장으로도 침수될 수 있는 지역이다.  사람들 따라 걷는다. 이슬람 사원으로 간다고 한다. 가다가 우리 숙소 관리인 샤만을 만나 셋이 얼싸 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샤만은 무척 기뻐하면서도 몸을 부들부들 떤다. 함께 샤만의 손을 꼭 잡고 어깨를 부축하여 이동했다.

샤만과 지역 사람들 따라 도착한 곳은 섬 중심부. 표고가 높은 곳이 없어 그나마 중심부에 모였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평상 자리를 권한다. 평상에 20분 정도 앉아 있다가 샤만이 자리를 옯기자 하여 옆쪽 평지로 옮겼다. 평상 옆에 있는 물탱크탑이 무너질까 걱정이라 한다.

샤만은 연신 핸드폰을 보며 안절부절하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4%다. 잏러면 친지들 연락이나 지진 정보를 알 수 없겠다 싶어 급히 내 보조 배터리를 빌려드렸다. 역시나 샤만에게 쏟아지는 친지들의 전화.

샤만은 전화를 끊고 나서 아잔을 읊는 동영상을 켰다. 배터리를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현재로는 마음의 안정이 우선이겠다 싶다. 샤만이 계속 아잔을 읊고 있다.

이렇게 밤을 새야 하나 하던 차에 한 시간 쯤 지나 외국인 한 명이 와서 쓰나미 경보가 해제되었다는 낭보를 전해 우린 모두 일어났다. 샤만이 숙소로 향하는 줄 알았더니 숙소 앞 개활지에 와서 앉는다. 우린 샤만에게 숙소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샤만은 잘 듣지 않는다.

그 자리엔 몇몇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페트병을 자루에 묶어 옆에 둔 채 우리에게 페트병을 권한다. 페트병 십 수 개가 모아져 있다. 그렇구나, 생존 수영 때 페트병 하나라도 뜰 수 있다 했는데 만일의 쓰나미 때 물에 뜨려면 이게 필요하겠구나!

조금 이야기하다 샤만이 이동한다. 숙소로 가는 가 했더니 숙소 앞 약간 넓은 마당을 가진 건물에 모인 사람들에게로 간다. 우리에게 자리를 권하고 사람들은 약간 낯선 표정으로 있다가 이내 우리에게 비상용으로 준비된 물을 권한다. 평상 아래 돗자리가 마련되었다. 저기에 앉을까 했는데, 누군가 필요할 것 같아 그냥 평상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샤만이 숙소에서 우리 싸롱을 가지고 왔고 우리에게 돗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다. 아, 저게 우리를 위해 샤만이 만든 자리였구나...

샤만에게 짐을 챙겨야 한다니까 알아듣고 같이 숙소로 갔다. 어차피 내일이 이동하는 날이니까. 샤만은 우리를 길이 아닌 숲쪽으로 안내한다. 왜 그럴까 했지만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숙소길은 앞 건물(길리 가든 방갈로) 담벼락을 지나야 하는데 그 건물이 많이 무너졌고 또 더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숙소는 의외로 많이 파과되었다. 샤만이 있는 단층 건물과 숙소용 단층 건물은 큰 피해 없어 보였는데 물탱크탑이 넘어져 물탱크가 깨졌다 우리 숙소 (2층 방갈로)는 중심 기둥은 어긋나기만 했지만 옆쪽을 받치는 기둥 하나가 부러져 전체로 크게 기울고 올라가는 계단 일부가 끊어졌다.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방갈로에 들어가니 과연, 엉망이다. 무게 중심이 흩어질까 조심하면서 급히 침대 위에 물건을 다 추스려서 배낭 안에 와구와구 싸고 내려왔다.

왜 샤만이 우리와 바로 숙소로 가지 않았는지 알겠다. 샤만은 지진에 건물이 무너지고 휘청하는 것을 그대로 경험한 뒤 대피한 것이라 두려움에 가득했던 거다.

다시 대피건물 마당으로 와 돗자리에 배낭을 놓고 쉬었다. 샤먼이 베게 두 개 씩과 담요 두세장씩을 가져다 주었다. 재난 야외 취침이지만 샤만의 배려로 엄청 호사를 부리는 것 같다. 샤만이 경아더라 평상에 올라가 자라고 했는데 경아는 우리 셋이 함께 돗자리에서 자자고 했다.

대피하는 내내 여진이 땅을 친다. 30여번 이상이었던 것 같다. 기분나쁘게 대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누운 자리 전체가 드드득 하고 양쪽으로 흔들렸다. 지진과 여진의 관계를 알기에 우리는 침착할 수 있었지만 샤만은 여진이 올 때 마다 주문을 외고 몸을 떨었다.

밤 새, 뒤척여 몇 번 깼는데 샤만은 잠을 안 자는 것 같다. 매번 우리에게 이불을 다시 덮어 주고 간다. 12시 쯤 바람이 세게 불어 무척 추웠지만 담요와 숙소에서 가져온 대형 타월을 덮으니 괜찮다.

하늘이 별들로 뒤덮였다. 새벽이 되니 북반구에서 보이던 낯익은 북두칠성과 오리온이 지평선 위로 올라왔다. 저게 뭐라고 이렇게 반갑기까지 하냐. 우리는 의외로 잠을 잘 잔 편이다. 춥던 바람은 새벽이되자 잔잔해졌고 6시에 깰때 까지 별 문제 없이 밤을 보냈다.

 

▲ 롬복 방살항을 나와 어렵게 탈 수 있게 된 구호 트럭. 너무나 운이 좋았다. (AP통신 사진)